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얼어붙은 호수를 찾아 빙어낚시를 한다. 손바닥 크기로 원을 그려서 얼음을 뚫고, 낚시 바늘에 구더기를 미끼로 끼워 낚시를 드리우면, 이윽고 ‘토독’치는 느낌이 온다. 호흡을 고르고 가만히 낚시를 올리면 하얀 빙어가 올라온다. 내장이 훤히 보이는 빙어는 그렇지 않는 피라미와 크게 구별이 된다. 천한 피라미는 내장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햇빛이 가득한 넓은 빙판, 쨍하게 느껴지도록 추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빙어가 파닥거리면, 그 은빛 몸뚱아리가 서럽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오늘따라 이 빙어를 연상하면서, 3월 4일 국회정보위원회에서 난도질당할 국정원의 여린 몸뚱아리를 연상하고 있다.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어야 할 국정원이 수면 위로 올라와 수치와 분노로 파득거리는 모습. 그것도 구더기라는 천한 미끼에 물려 올라온 국정원을 바라보면서, 필자(筆者)는 빙어의 몸을 가려줄 장막을 준비하고자 한다. 내장이 보이는 그 하얀 몸뚱아리에 우리는 연민이 쏠리는 아픔을 느낀다. 

절대 천한 피라미일 수 없는 고결한 은린(銀鱗)의 어족(魚族)을 우리는 피라미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요원들의 노고와 고결한 가치를 우리는 너무 쉽게 난도질해서도 안 된다. 강토(疆土)와 민족(民族)을 지키는 작업은 고결하다. 앞으로 우리는 누구에게 이 숭고한 임무를 부여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랑은 아껴주는 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국정원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정보는 국력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국력을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이 소중한 임무를 맡긴다. 빙어는 겨울의 축복이다. 우리는 이 빙어를 얻기 위해 봄과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기다린다. 국정원 요원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한 사람의 유능한 요원을 기르기 위해 봄과 여름, 가을,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 겨울 빙판 위에 올라온 빙어는 겨울햇빛에 온몸을 파닥이며 죽어간다. 지금 국정원 요원들도 국회정보위에서 강렬한 비판의 햇볕을 쬐며 파닥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가련한 그 무엇에 대하여 우리는 한번쯤 수고로운 자에 대한 무거운 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면 밑 저 아득한 음지에 있어야 할 빙어는 빙판 위 양지(陽地)에 올라와 죽어간다. 우리의 국정원도 양지(陽地)에서 뜻을 꺾이고, 어느 호수 얼어붙은 빙판 위에 몸을 눕히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국정원의 모든 것을 수면 밑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빙어는 고결하고, 그 피는 차갑다. 우리의 요원들도 냉엄한 세상에서 차갑고 고결한 꿈을 꾸며 산다. 이제는 고결한 그 꿈을 위해 돌려 보내주어야 한다. 저 암흑의 세상, 얼음 밑 수은처럼 무겁고,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고, 누구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그 수면 밑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빙어여, 너와 나는 사는 곳이 다르고, 태어날 때와 죽어갈 때가 다르다. 내가 어찌하여 너를 탓할 것인가. 다만 나를 위해 파득거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 겨울의 풍요를 위해 눈보라치는 차가운 세상의 양지(陽地)로 올라온 너를 사랑할 뿐이다. 

2015. 7. 23 중복날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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