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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서 해남가는 길, 강진 월남사지를 가다잡초 무성한 큰 절터, 3층석탑에서 매력을 느끼고..진각국사비는 오롯이 남아..

   
▲ 월남사지3층석탑, 높이sm 7-8에 달하는 웅장한 모습이고 백제양식을 따른 매력적인 탑이다.
대선사 혜심이 입적하자 고려 고종왕은 진각국사라는 시호를 내린다.

부도는 송광사 광원암 북쪽에서 장사를 지내고 부도를 세웠는데 부도의 이름을 원조지탑이라 사액했다.

진각국사비(보물313호)는 영암서 해남가는 길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즉 월출산 남쪽 산아래 월남사에 세웠다.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큰절(면적 33,106㎡)로 세워진 연대는 정확치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고려 중기 진각국사 혜심이 처음지었다고 전해진다.

비는 어떤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위해 나무나 돌, 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진각국사비는 월남사를 창건한 이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 고종왕 37년(1250년)에 세웠고, 당대 어릴적 신동으로 불리며 ‘동국이상국집’ 등의 저서를 남겼던 이규보(1168-1241년)가 지었고 글씨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 탁연이 왕명을 받들어 썼다.

이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몸돌을 올린 형태로 머리는 용머리에 구슬을 머금은 형상이다.

비의 전면은 떨어져나가 내용을 알수 없으나 뒷면은 상당한 부분이 남아있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비에는 "승과를 거치지 아니하고 승직에 오른 것은 사(師)가 처음이었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월남사는 없고 월남사, 그 절터만이 오롯이 삼층석탑과 이 진각국사비를 지키고 있다.

   
▲ 지금은 볼 수없는 월남사, 오래된 푯말이 아니더라도 이곳이 월남사지였다는 것은 3층석탑과 진각국사비로 알수 있다.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에서는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월남사지3층석탑(보물298호)으로 명명된 이 탑은 거의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20여미터 지점에 이와 유사한 탑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탑기단이 그대로 있고 직사각형의 탑돌들은 돌담에 박혀있다.

이 탑의 구성은 단층 기단위의 3층석탑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쓴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고려 후기에 창건된 듯하나 언제 폐찰되었는지 알 수 없다.(사진은 진각국사비)
   
▲ 3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20여미터 지점에 이와 유사한 또다른 탑의 기단부.
이 월남사지 3층석탑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기단부는 물론 탑신부에서도 가으로 깍은 많은 석재들로 세우거나 눕히거나 하여 탑을 완성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이 탑은 백제양식을 엿보이고 있어 다분히 이지역에서는 고려시대에도 백제계 양식의 탑이 세워지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말 아쉬움이 남는 것은 보기 드물게 큰 절이었다는 것을 두루 짐작케 하는 드넓은 절터와 큰절이 아니면 없을 법한 웅장한 3층석탑, 그리고 왕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진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며 왕명으로 그 비가 세워지기까지 창건에서부터 폐사까지 참으로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 월남사의 자취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손은수 기자  dmstn0467@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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