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 김정은 암살 영화 ‘더 인터뷰’의 세계적 이슈몰이, 영화 <국제시장>의 돌풍. 바야흐로 보수의 시대가 온 것만 같다. 이정희 전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정치보복”이라며 음모론을 폈다 오히려 비난여론을 샀고, 감히 ‘최고 존엄’의 암살을 다룬 영화를 그냥 둘 수 없었던 북한은 미국 코미디 영화 한편 막으려다 오히려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대한 향수와 연민을 담은 <국제시장>의 ‘보수코드’에 당황한 진보적 혹은 좌파적 영화평론가들은 “반동영화” “볼 필요 없는 영화” “역사의식 없는 영화” 라고 ‘싸가지 없이’ 한 마디씩 뱉었다가 네티즌들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이들의 작은 활약 덕에 영화는 더욱 탄탄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단지 박근혜 정부의 ‘공안몰이’ 탓이라고 보는 진보주의자들이 아직도, 혹시 있다면, 진보 명찰을 떼야 맞다.

진보의 필두로 여겨지던 20대마저 보수화됐다는 우리 사회 전체의 보수적 흐름에 대한 진단에 사회학적, 정치학적 분석이 여럿 있겠지만, 핵심은 진보 혹은 좌파의 실패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소위 진보진영은 88만원 세대라는 구호로 20대의 분노를 키웠지만 정작 그 분노를 잠재울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젊은 세대가 정규직의 공룡화에 이용당하는 데도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했을 뿐 시장과 자본을 악마로 만드는 것 외엔 어떤 경제적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천안함이 폭침당하고 연평도가 불타는데도 안보에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에겐 음모론이나 펴며 정부를 비판하기 바빴던 것도 진보다. 인권을 말하면서도 정작 북한 인권은 말하지 못하는 위선적 태도는 진보에 대한 회의감에 젖게 했다. 진보진영은 통합진보당이 총선 등 그간 보여준 온갖 탈·불법과 폭력성은 물론이고 주사파를 분리하지 못하는 종북성을 알고도 내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보수, 골방에 갇힌 노인의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자기혁신 이뤄내야 한다

그런 진보들은 오늘도 우리 사회 보수화에 대해 그저 이명박, 박근혜 탓하기 바쁘다. ‘국개론(국민개새끼론)’이란 싸가지 없기 이를 데 없는 조어까지 만들며 이런 정부 만든 책임을 ‘너희 편 국민’에게 돌리기에 힘쓴다. 나의 탓을 남에게 돌리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대책이 없다. 총선과 대선 등 선거마다 족족 국민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자 진보는 스스로 개혁과 혁신을 다짐했었지만 그것도 공염불에 그쳤다. 심상정, 노회찬은 종북과 갈라서고 환골탈태하겠다며 진보신당, 정의당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그렇게 다짐해 놓고도 때마다 어김없이 다시 살림을 합쳤다. 집권에 눈이 먼 새정치민주연합은 표가 아쉽다는 이유로 매번 그런 구태로 오염된 세력에 스스로 자기 자리를 내주며 수권의 생명력을 잃어갔다. 우리 사회의 보수화에 이런 진보진영의 실패가 끼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

통진당 해산 결정 전후로 우리 사회에 보수화 바람이 부는데 힘입어 보수 일각의 강경한 여론몰이 모습을 보면서 기우에서 한마디 하고 싶다. 진보좌파가 실패한 건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자기진영 안에서 성을 두껍게 쌓았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신줏단지 모시듯 했고, 동의하지 않는 남에겐 귀를 틀어막고 적대감과 배타성만 보였다. 민주대 반민주라는 과거의 틀 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보수의 가치와 원칙을 확고하게 지키되 시대에 맞춰 계속해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수의 목소리가 골방에 틀어 앉은 고집불통 노인의 세상물정 모르는 잔소리처럼 들려선 안 된다. 진보가 실패한 건 구태를 끊어내지 못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해서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과거만 그리워하고 진보와 좌파를 비난하는 데만 그쳐선 곤란하다. 진보의 수준이 실력도 싸가지도 없는 현재에서 더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는데 보수마저 자기혁신에 실패하면 그 뒤의 일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보수의 실패는 대한민국의 실패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진보의 실패에 득의양양해 안주하려는 듯 보이는 지금이 보수에게 진짜 위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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