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위법’…高法, 대형마트 손 들어줘

◇“점원 도움받는 마트는 대형마트 아니다” 판결 

법원이 지방자치단체의 의무휴업·영업시간 제한 처분에 대한 소송에서 처음으로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줘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고법 행정8부(장석조 부장판사)는 △이마트·홈플러스 등이 대형마트라는 전제가 틀렸고 △지자체 처분이 절차적으로 위법하고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 등의 이유를 들어 지자체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 의무휴업 대상 대형마트 아니다

소송을 낸 업체들 역시 처음부터 “대형마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니 영업시간 제한 등의 처분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옛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매장 면적의 합계가 3000㎡ 이상이고, 식품·가전 및 생활용품 중심으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으로 정의된다.

법원은 ‘소비자가 점원의 도움 없이 물건을 구매 하느냐’에 주목했다. 서울고법은 “해당 요건은 대형마트에만 특별히 규정돼 있는 것으로, 다른 대규모 점포와 대형마트를 구별 짓는 핵심적인 개념 표지로 보인다”며 “원고 측 업체들은 점원이 구매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기 때문에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점포의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동대문구와 성동구가 대형마트가 아닌 이들 업체에 영업시간 제한 등의 처분을 내린 것은 처분 대상을 오인했으므로 나머지 점에 대해 더 살펴볼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위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따르면 사실상 대형마트에 해당되는 사례가 없기 때문에 향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대형마트 중에는 코스트코와 같은 외국형·창고형 대형마트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점원들이 매장 곳곳에 상주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형 대형마트 중에는 이 법에서 규정한 ‘대형마트’라고 판단할 수 있는 곳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이 판결대로라면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려면 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영업선택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

재판부는 입법상의 문제뿐 아니라 영업 규제의 실효성도 사실상 없다고 판단했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라고도 결론을 내린 것이다. 유통산업발전법 입법의 근거가 됐던 골목상권 보호가 실제적으로는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지자체의 처분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는 뚜렷하지 않고 아직도 논란 중”이라며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결국 상생보다 소비자 선택권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재판부는 실례로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인한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을 들었다. 맞벌이 부부들은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장을 보기 어렵고, 아이가 있는 가정도 편의시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전통시장의 구매 환경 등을 개선해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이 모여들도록 해야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한 것이 과연 정당한 이익 판단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강조했다.

반면 원고 측인 유통업체들에 대해선 “소비자 효용의 증대를 위한 노력이 국내 유통업의 대외적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왔고, 해외 자본으로부터 국내 시장의 잠식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지자체가 내린 영업시간 의무휴업 처분이 절차적으로 위법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지자체가 영업시간 등을 제한하면서 이마트 등 대규모 점포의 대표자가 아닌 마트 내 임대매장 운영자에게 사전 통지나 의견 제출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이는 처분 전체의 위법 사유가 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1월 발표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효과에 대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한 전통시장 방문 증가 횟수는 연평균 0.92회로 1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거의 없음이 드러난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의무휴업이 전통시장 보호라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라며 “대형마트에 입점하고 있는 중소상인들도 적지 않은데 현재의 영업 규제는 그들에 대한 배려도 전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골목상권 보호나 상생 등을 목적으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의 실질적인 입법 취지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전통시장 상인 근무환경 더 열악”

이마트 등 대형마트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형마트 근로자보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근무 환경이 더 열악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대규모 점포 근로자의 경우 교대근무나 대체휴무일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오히려 전통시장 상인들은 상대적으로 근무 환경이 더욱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영업제한 처분이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GATS)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GATS는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관한 헌법적 한계를 고려한 보편적인 기준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 간 합의가 이뤄져 국내법적 효력을 갖게 된 이상 지자체는 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재량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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