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전 의원의 비통한 낙선소감문을 읽고

 

▲ 박종덕 본부장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 지난 1000년간의 역사에 가장 뛰어난 君主로 평가받는 인물이지만그렇다고 흠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많은 흠을 남겼고 구설수에도 오르기도 했지만 총체적으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도자였다는 점에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異論은 없다.

25살에 언니 메어리여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생각지도 않게 왕위에 올라 45년간 통치하다 70의 나이에 눈을 감은 여왕은 재임중에 당시 全유럽을 지배하던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예상밖의 대승리를 거둠으로써 훗날 大英帝國의 터전을 마련했고 오늘날 英語가 지구촌의 공용어로 정착하게 된 배경이 되었던 것도 바로 스페인의 막강한 무적함대를 격파한 여왕의 功이라 말할 수 있다.(천대받던 英語를 문명국언어로 널리 전파시킨 일등공신 세익스피어도 이때에 등장한 인물이다.)

엘리자베스여왕은 단순히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상대로 거둔 승리때문에 위대한 군주가 된 것은 아니었고 그녀는 진실로 영국과 영국국민을 사랑했던 군주로 자신의 결혼으로 혹시나 영국왕실이 외국왕실의 간섭이나 지배를 받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는 유명한 말로 결혼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던 여성이기도 했다.

그런 女王도 한 사람의 인간인지라 老年에 막내아들같은 美男 에섹스백작에 홀랑 빠져 에섹스의 손아귀에 놀아난 적이 있었다. 남녀사이의 일이란 워낙 은밀한지라 둘 사이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한밤중에 에섹스백작의 침실에서 여왕이 나오는 장면이 목격되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그렇다고해서 둘 사이에 육체적관계까지 있었다고 단정하기에는 당시 여왕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

어쨌던 여왕의 에섹스백작에 대한 민망할 정도의 철없는 짝사랑에 대해서는 궁안의 누구도 말릴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이는 결국 화를 부르게 되리라는 건 두말 할 것도 없다.

에섹스백작은 공개석상에서도 여왕을 "베스"라고 부를 정도로 버릇이 없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王命마저 우습게 볼 정도로 거만하게 되었고 누구도 이 젊은 美男백작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방자해 졌다.

어느 날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토벌하는 사령관으로 자원해 나갔던 에섹스가 느닷없이 전장을 이탈해서 왕궁에 나타나자 놀란 여왕은 대노해서 나무랐는데 에섹스백작은
도리어 여왕을 훈계하려 들었고 이에 격노한 여왕은 에섹스백작의 행위를 여왕에 대한 배신이요 영국에 대한 반역죄에 해당한다고 선언하고 에섹스백작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한다.

아마도 당시 궁내 대신들은 여왕의 이런 예상밖의 단호한 태도에 엄청 놀랐지싶다.여왕의 총애를 에섹스백작은 명령불족종으로 갚았으니 여왕의 믿음을 배신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여왕에 보낸 편지에 에섹스는 자신의 행위가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죄에 해당하나 여왕을 향한 사랑은 변합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늙은 여왕은 이 편지를 읽으며 소녀처럼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인생의 말년에 잃어버렸던 청춘을 나이어린 에섹스백작을 통해 몰래 꽃피워보고 싶었던 여왕이었지만 배신만큼은 용서하지 않았고 그런 엘리자베스여왕의 단호함이 오늘 생각나는 이유는 선거때마다 배신을 밥먹듯 하고 이런 배신을 성공을 위한 처세술로 용인해주는 순천 사회의 타락한 선거판이 너무 개탄스럽기 때문이다.

김경재 전 의원이 12일 뒤늦게나마 밝힌 4.27 순천보선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담은 서신을 읽으며, 순천사회에 대한 원망감과 자괴감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서신에선 고작 3.3%의 표를 얻기 위해 뛰어다녔던 것에 대해 후회와 원망이 묻어나왔지만 마지막엔 그나마 3.3%의 표를 준 순천시민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마치 자기들이 당선될 것인양 후보단일화를 미뤘던 후보들에게도 서운한 심정을 솔직히 밝혔다.

한마디로 이번 순천보선은 순천사회가 얼마나 신의가 없는 얄팍한 사회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회인지를 보여줬다.

6명이 되는 무소속후보들이 단일화를 못 이뤄낸 배경에는 선거때마다 후보와 후보를 오가며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선거브로커들의 농간과 각 후보들의 당선을 부추키며 후보단일화를 반대한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런 정치토양이 대세다보니 어쩔수 없단 자괴감마저 든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신뢰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부모자식간의 신뢰가 무너진다면 가정이 존재할 수 없고 친구사이에 믿음이 없다면 굳이 친구라는 단어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신뢰가 무용지물이 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사회가 아니라 아사리판 수용소보다 못한 곳이 되고 만다.

속물적 포만감을 충족하기 위해 얄팍한 이해타산으로 어제의 主君을 배신하고 자신이 누리는 오늘의 위상이 자신의 능력의 소산인 것처럼 착각하는 각 후보진영의 오만방자한 태도.

4.27순천 보선에 대한 비통한 심정을 담은 비운의 정치인의 낙선소감문을 읽으며 국가를 위해 한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포기하고 말년에는 異性으로 아낌없이 사랑했던 젊은 에섹스백작마저 단호하게 사형장으로 보냈던 엘리자베스여왕의 엄격한 公私구분과 배신에 대한 가차없는 응징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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