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의 폐해 중에서 필자(筆者)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부실급식에 대한 문제였다. 물론 부자아이들에게 돌아갈 급식비를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려서 더 좋고 더 많은 지원을 하자는 것도 관련된 문제이지만, 부실급식 문제는 그 자체가 너무 심각한 문제이다. 

학생들에게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급식이 갖는 의미의 전부라 하여도 좋다. 그러나 질 낮은 부실급식을 제공할 시에는 급식 자체의 존립마저 무너질 일이다. 가난하다 하여 국가로부터 보조받는 일이 슬프기도 하겠지만, 김치 몇 조각에다 멀건 국 한 그릇 주는 부실급식을 먹으면서 가난한 학생들은 얼마나 상처를 받을 것인가? 

더구나 이런 부실급식에다 비위생적인 불결급식마저 겹치면, 급식은 해서는 안 되는 흉물이 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현재 학교급식은 급식비가 물가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부실급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서잉 크고, 일부에서는 위생마저 믿을 수 없는 불결급식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일은 섬세해야 한다. 부자들의 마음가짐은 오만이 아니라 겸손이어야 하고, 부를 누리는 것은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누림이어야 한다. 무상급식은 이러한 섬세한 배려가 뒷받침된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전라남도 구례군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류이주가 1776년부터 6년에 걸쳐 지은 이 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조선시대의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운조루’라 함은 택호로서, 원래는 큰 사랑채 누마루의 이름으로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과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710평의 대지에 처음 지을 당시 78칸의 규모였으나 지금은 모두 63칸이 남아 있고 건물의 평수는 129평이니 고택으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라 본다. 

이 운조루에 부자의 마음씀씀이를 알 수 있는 뒤주 하나가 있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뒤주다. ‘남이 가히 열 수 있는 뒤주’라는 뜻이다. 흉년에 이르면 배고픈 사람들이나 식량이 없는 사람은 누구든 이 뒤주를 열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으며, 뒤주의 위치도 가져가는 사람을 배려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었다고 전한다. 또한, 78칸 규모의 사대부 가옥이지만 굴뚝을 아주 낮게 하여 밥 짓는 연기가 외부에서 보이는 것을 막아 끼니를 때우기 어려운 시절 이웃들이 위화감을 갖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자취도 보인다. 

그 뒤주에는 보통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간다고 한다. 구멍 마개를 옆으로 돌리면 쌀이 나오는데 보통 한 사람이 한두 되를 가져갔다. 주인이 보지 않는다고 몽땅 가져가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내 배가 고파도 더 고픈 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살아 있었으니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진정으로 나누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던 셈이다. 

운조루에 남아 있는 굴뚝에도 가진 자의 겸손한 태도가 살아 있다. 이 집 굴뚝은 유난히 낮아서 1미터도 되지 않는다. 건축 공학적으로는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술술 잘 빠지는 게 당연한데도 낮게 설치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부잣집에서 밥하는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배려 때문이었으니, 이는 진정한 부자의 자세다. 

가뜩이나 먹을 게 없어서 주린 배를 움켜잡는 서민들이 부잣집에서 올라가는 굴뚝 연기를 보자면 자연히 시샘과 분노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운조루의 낮은 굴뚝은 모두가 공평하게 가지지 못할 때 혼자만 지나치게 소유하는 것도 부끄럽고 죄스러운 것이라는 선비의 철학이 녹아든 상징이라 하겠다. 

이처럼 운조루는 가진 자가 더 삼가야 하는 처신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겸손하게 나누는 삶을 대대로 실천하는 표상이 되었다. 그것이 동학과 여순 반란 사건, 한국전쟁 와중에 격전지이던 지리산 아래 자리 잡았으면서도 운조루가 불타 없어지지 않고 오늘까지 남아 있는 명백한 이유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 뒤주에서 가능한 많은 양의 쌀을 가져가려 하였을 것이나, 뒤에는 항상 뒤주가 채워져 있음을 보고 먹을 만큼만 취하게 되었다 한다. 나중에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쌀을 가져가지 않게 되었으니, 매월 그믐에 이 집의 어른은 뒤주를 점검하여 다 비워지지 않았을 경우 큰 며느리에게 큰 꾸중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창피하지 않도록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고, 혹여 밥 짓는 연기가 밖으로 나가 배고픈 사람들이 위화감을 갖지 않도록 굴뚝을 집밖에 두지 않았으며, 또한 낮게 만들었다는 운조루 주인 류이주의 부자로서의 마음 자세가 우리 후인(後人)들의 가슴을 친다.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당과 진보좌파들이 추구하는 무상급식은 예산마저 없이 다른 항목의 예산을 전용하여 실시하는졸속급식이다. 그리하여 물가변동에 맞추지 못하는부실급식이 이루어지고 있고, 위생마저 엉터리인불결급식이다. 이에 국민세금을 퍼다 붓는 세금급식이며, 무상급식이 필요없는 부자들을 위한부자급식이다. 한마디로, 서민을 위한다는 급식이 번지수를 잘못 택한 바보급식인 것이다. 더군다나, 학생 개인 입맛과 취향을 무시한강제급식, 일제급식이라는 점은 진보좌파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만약 가난한 학생들이 이런 부실 급식을 받아들고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를 새민련과 진보좌파들은 생각하여야 한다. 가슴의 상처는 가난하여서가 아니라, 짐승이나 먹을 음식을 받아들고 생각하는 그 음식 자체에 있다. 여기서 느끼는 가난한 자의 설움과 비애는 얼마나 아픈 상처가 되겠는가. 

그리고 이런 것을 주면서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정당이나 좌파들에 대한 원망도 함께 따르리. 현재 2300원짜리 부실급식을 4000원이나 5000원으로 올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풍족한 급식을 놓고 가난한 서민의 아이들이 행복해 할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선택적 급식으로 대한민국 전체 학생의 87%가 되는 부잣집 학생들에게 돌아갈 급식비를 13%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리자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하여서 왜 나는 너와 같은 웃음을 지을 수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하여서 왜 너는 나와 같은 자리에 앉지 못하겠는가. 가난하다고 하여서 왜 조국을 사랑할 수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하여서 왜 꿈까지 없겠는가. 

그러므로 새정치민주연합당과 진보좌파들은, 모쪼록 전남 구례에 있는 운조루 주인 류이주의 타인능해(他人能解) 뒤주의 정신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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