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정권이 햇볕정책에 간첩 잡는 국정원장 해임으로 이석기 키워

민주당 한명숙 대표 연합공천으로 통합진보당 이상규 김미희의원 당선시켜

노무현정권 간첩 잡은 국정원장 해임시켜 한국을 간첩천국 만든 반역행위

이석기 통진당은 반성은커녕 대북 전단 풍선보내기 폭력저지 남남갈등 부추겨

헌재가 통진당 해산판결 안 하면 국회해산론 처럼 헌재 해산론이 확산 될 것

"북한 선거자금 받아 쓴 이상규 김미희 의원"

2014년10월25일 보수단체에서 북한에 풍선보내기를 통합진당이 폭력으로 저지했다. 통합진보당 파주시당 위원장이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 회복 파주 시국 회의'라는 단체 소속회원들이 복면을 쓰고 풍선을 찢고 북에 보낼 전단을 훼손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폭력현장에는 통진당 소속 파주 시의원도 참여했다. 북한의 지지를 받은 이들은 대북풍선 날리기 저지를 빙자해서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애국시민단체의 활동을 무력폭력으로 저지하는 통진당은 북으로 추방해야 한다.

1990년대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씨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변론 증언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아 민혁당이 창당 되었고 북한에서 40만 달러를 받아 일부를 선거자금에 썼다고 했다.

통합진보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인 이상규·김미희 두 사람이 1995년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북한으로부터 받은 활동 자금 중에서 각각 500만원씩을 지원했다고 증언했다. 또 이들은 민혁당의 당원이었거나 하부 조직원이었다고 했다.

김영환씨는 1989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뒤 1991년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와1992년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지하조직을 만든 것이 민혁당이다. 내란음모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통진당 이석기 의원도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이었다. 김영환 씨는 북한을 다녀온 후 김일성 독재에 회의를 느껴 1997년 민혁당을 해산하고 구속됐다가 전향했다. 전향한 후 중국에서 탈북동포의 탈북을 도와 왔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이 이끌던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는 해체되지 않고 민주노동당을 거쳐 통진당의 주축 세력으로 조직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은 올해 8월 내란선동죄 등으로 2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김영환 씨는 통진당은 “폭력 혁명과 종북 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했다.

김영환 씨는 “북한이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조직원을 입후보시키고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면서 “1991년 밀입북 당시 북에서 지원받은 40만 달러와 각종 재정사업으로 번 돈으로 후보들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 후보들 중에 19대 국회의원인 통진당 김미희 이상규 씨가 포함됐다고 했다. 김 의원은 1995년 지방선거 때 경기 성남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 의원은 서울 구로구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김영환씨는 지방선거 후보 6명에게 500만 원씩,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4명에게 1000만 원씩을 지원했고 이석기 의원도 전달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01년 민혁당 사건 판결문에서도 95년 지방선거 때 돈을 받은 사람으로 '이상규' 등 3명의 실명이 나오고 있고 1996년 총선 때도 '이○○ 외 1명'에게 각 1000만원씩 지원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이상규 김미희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그런 자금 구경도 못 했다"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김영환씨를 "명백한 허위 사실 유포이자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면서 "검찰과 법무부, 국정원이 공모하여 통진당을 없애려는 해산 선동"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이런 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보호를 받으면서 국고 지원까지 받는 것은 민주당 한명숙 대표가 통진당과 연합공천으로 이런자들을 국회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이나 새정치연합은 다를 게 없는 종북정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통진당 해산 심판을 조속히 내려야 한다. 

김영환 증언은 헌재에 해산심판 요건 충족

김영환. 80년대 주사파 학생운동권에선 그를 강철이라 불렀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주체사상 학습서로 읽혔던 ‘강철서신’ 저자이기도 한 김 위원은 1989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2년 뒤 밀입북해 김일성을 면담하고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조직한 혐의로 1999년 구속됐다가 전향했다. 그가 썼던 ‘강철서신’은 쉬웠다. ‘솔직·소박·겸손’의 품성론은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생활 태도까지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주사파의 대부였던 그가 10월21일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사건 공개변론에 법무부 측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그는 “1995년 지방선거 때 나는 민족민주혁명당 (민혁당) 중앙위원장으로서 하부 조직에 돈을 주면서 후보자들에게 500만원씩 자금 지원을 지시했다”며 “성남에서 김미희 후보가, 구로에서 이상규 후보가 각각 출마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 지원금엔 북한에서 받은 40만 달러와 민혁당이 사업을 해 번 돈이 섞여 있었다고 했다.

이석기·김미희·이상규 의원은 한때 김영환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NL(민족해방)계 운동권 출신들이다. 이석기 의원은 김영환씨가 민혁당 1인자였을 때 당 서열 5위쯤 하는 경기남부위원장을 맡았다. 서울대 약대 학생회장 출신의 김미희 의원은 졸업 후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인물이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을 지낸 이상규 의원도 졸업 후 서울 구로·영등포 지역에서 야학과 노동운동을 했다.

1956년 독일 헌재의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을 했는데 통합진보당 상황과 재판 쟁점이 비슷하다. 독일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기반으로 소련 등과의 평화조약 체결, 독일 재통일 등을 주장했다. 당시 독일공산당의 지지율은 매우 낮아 49년 연방의회 선거에선 15개의 의석, 53년 선거에선 단 한 개의 의석도 못 얻었다. 독일 헌재는 청구한 지 5년 만에 독일공산당 해산을 결정했다. 독일공산당은 현 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겠다는 어떤 강령·문서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헌재는 “헌법상 정당의 위헌성은 폭력 혁명의 구체적 기도를 요건으로 하지 않으며 당의 정치 노선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항할 의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통진당은 정치투쟁, 사상투쟁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통진당은 폭력혁명과 종북 노선을 추구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를 해 왔다. 북의3대 세습, 핵개발, 인권 탄압 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애국가를 안 부르고 태극기를 인정 안는 국민의례대신 민중의례를 했다. 연방제통일 국정원해체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외치며 북한 앞잡이 노릇을 해왔다. 이석기는 RO(혁명조직)하여 '국가 기간시설을 타격해야 한다'는 내란 음모사건을 벌이다 구속되었다. 만일 이런 정당에 헌법재판소가 해산 심판을 하지 않는 다면 헌재를 해산하라는 국민들 강한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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