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영 칼럼 <4대강과 선비들>

영산포 다리 밑에서 큼직한 돛단배를 본 어린시절 기억이 있다. 이미 영산강은 그 옛날 돛단배를 잊은지 오래다. 발전된 문명에 강이 순응한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부는 뭣 때문에 마지막 숨통처럼 흐르고 있는 자연의 강을 그토록 집요하게 파헤쳐야 했을까. 4대강 사업은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한반도 대운하로 개발 하려다 반대에 부딪히자 4대강 정비사업으로 변경했다.

 
정비를 한다던 사업이 순수한 정비에 그치지 않을 것 같아서 많은 국민이 반대를 했었다. 사업의 본질 보다는 정치적인 성향으로 찬반에 응하는 국민이 많았다. 정치적으로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권이긴 하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와 지금의 새누리당 정부는 막무가내 밀어붙이기 식으로 급하게도 공사를 진행하여 완공하였다.

보라고 말하지만 실은 댐을 건설하여 흐르는 물을 가두는 강의 자연기능을 상실케 하는 대토목공사를 하면서도 그들은 친환경적이며 생태계 복원을 위한다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수천년 자연형성을 졸속으로 건드린 결과 경제효과 보다는 환경측면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뿐이다.

불과 3-4 년 사이에 F-15전투기 200대 구입가격 정도되는 22조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대 토목공사가 미래 국가비젼과 어떤 관계가 있었던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천문학적인 돈을 남해와 서해로 그냥 흘려보내버린 4대강사업 추진의 또 다른 그림자는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정책의지, 이를 뒷받침 해준 언론, 학계, 관계, 시민단체 종교계의 정치의식과 그들이 색칠한 탐욕의 품격을 말해주는 종합셋트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제아무리 겉으로 훌륭한 말씀들을 외쳐대지만 어쩔 수 없는 싸구려 품격은 감출수가 없었음을 필자는 아프게 생각한다. 전두환 정권시절 평화의 댐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들이 평화의댐 건설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 들이댄 과학적 수준을 이명박 정부는 그대로 써 먹었다.

기억도 생생하다. 북한이 물로 공격하는 수공을 가해오면 서울에는 6.3빌딩 반절 높이 까지 물에 잠긴다고, 그래서 그에 대응하는 평화의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코 묻은 아이들 돈 까지 건설비 성금을 내게 하는 등 전국민을 정치적 선전선동의 대상으로 삼아 바보로 만들었었다.

그러한 이론적 근거를 준비해준 사람들이 그들 알량한 선비들이었다. 그 선비들 다 어디서 뭣 하고 계실까. 4대강 사업 역시 똑 같았다. 대운하를 건설하면 경제적으로 물류에 있어서 이익이 된다는 불나비 같은 각계 선비들이 방송에 나와서 대운하의 총대를 메고 나설 때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말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무슨 배가 산으로 올라가서 강으로 들어오느냐고, 통렬한 일침이었다. 교활한 선비들의 발호가 이명박정부가 풍기는 근본 품격이었음은 두말 할 것 없다. 토목 아니라 핵 물리학 이라도 잘은 모르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암만 들어봐도 미심쩍은 논리를 무슨 호강을 얼마나 하겠다고 양심의 상식을 왜곡하면서 권력의 입맛대로 선전해 주던 수많은 대운하 선비들 지금은 다 어디에 계십니까. 촌부인 글쓴이의 강에 대한 상식은 이렇다. 자연은 언제고 원상복귀 한다.

그 길이 인간에 의해서 막히면 재앙으로 대답한다. 인간을 위해서 자연은 존재한다. 인간성을 담지 못한 개발에 자연은 재앙으로 응수 한다. 그 재앙은 자연재앙 뿐만 아니라 우리의 뼈골을 빼먹을 유지관리를 위한 끝없는 비용은 분명 재앙이고야 말 것이다.

지구가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인간의 젖줄로 표현되던 강의 본질을 뒤 엎어버리는 그 무대뽀 정신은 어디서 왔을까. 이 모두가 서너푼의 탐욕에서 나오는 양심을 외면한 선비들의 논리와 주의주장이다. 그것이 싸구려 품격이라는 것이고. 그 품격이 장악한 국가는 언제고 그 댓가를 치루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찬성했던 국민도 4대강사업의 본 바닥이 들어났다 싶으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곳곳에서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할 때 마다 으르렁 거리는 강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냉정하게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물을 곳은 물어야한다. 그러한 자세가 주인으로서 바른 일이다.

2014년 10월 8일
칼럼리스트 임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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