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을 ´봉기군´으로, 점령을 ´진출´로 표현

오는 10월 19일이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66주년이 된다. 66주년을 맞이한 비극적인 사건의 실체에 대해 순천대학교와 순천지역 시민단체가 진실규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순천지역에서 이뤄진 이 사건에 대한 역사왜곡과 좌익미화 행위를 두고 보건대 이들의 진실규명 작업은 신뢰할 수 없다. 지난 2004년부터  이들은 지역의 상흔을 치유한다는 미명하에 역사를 왜곡시킨 흔적을 순천시 도처에 남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보는 '여수14연대반란 사건'의 역사왜곡 현장을 그대로 연재 보도한다.<편집자註> 

여순 반란사건을 보도한 당시 언론
지금도 북의 인민공화국을 ‘조국’으로 인식하는 자들은 탈북단체의 애국적 행동을 ‘매국(賣國)’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6.25 당시 벌어진 좌익빨치산들의 파업과 반란 행위를 ‘애국운동’으로 표현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여순반란사건을 ‘여순 봉기’로 말하고 있는, 현재 여수순천 인근의 좌익 시민단체 사람들이다. 여기에 순천시도 여과 없이 협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순천역에 있는 안내판을 허락한 관청이 바로 순천시이다.

다음은 순천역 앞에 서있는 여순반란 사건 안내판 내용 전문(全文)이다.

순천역은 여수의 봉기군이 인근 지역으로 진출한 첫 번째 지역이었다. 통근 열차와 차량에 나누어 탄 1천여 명의 봉기군은 1948년 10월 20일 09시 30분 경 수천역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순천에 파견 나와 있던 홍순석 중위가 지휘하는 중대 병력의 합류로 더욱 사기가 올라 광양 삼거리와 동천 제방에 배치된 경찰을 잇달아 물리치고 시내로 진격하였다. 따라서 순천역은 여순 사건 봉기군의 확산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며 순천역 공격의 중요 거점이었다. 현재의 역 건물은 1960년에 세워진 것이므로 여순사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장소는 그대로이다.<여순사건 관련지 - 순천역>

 반란군을 봉기군으로 표현한 순천역 앞 ´여순사건 관련안내판´ 본지의 보도로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위 내용엔 참으로 반민족적이며 반국가적인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반란군을 ‘봉기군’으로 표현한 회수가 무려 3회, 그리고 반란군의 반국가적인 순천 점령을 ‘진출’로 표현하고 있다. 경찰을 물리친 것을 자랑스럽게 표현 대목도 있다. 홍순석의 합류로 사기가 올랐다는 것도 역시 반란군에 대한 동지(同志) 의식이 반영된 표현이다. 더구나 ‘반란’이란 말을 빼고 ‘여순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도 좌시할 수 없다. 반란이 아니라는 좌익들의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안내판 내용은 좌익들의 시각을 그대로 쓴 것이며, 순천시는 이에 동조하여 예산을 주어 안내판을 세우도록 협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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