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향동에 조성중인 문화의 거리 조성공사 과정에서 도로를 일방통행도로로 바꾼 것에 대해 해당 지역구 시의원과 일부 지역민이 반발하고 있다.

최근 그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삼성생명 옆 도로에서 시작해 15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 순천의 풍물을 알릴 수 있는 가계들과 식당, 그리고 전시관, 한옥글방도서관 여기에 최근 짓고있는 영상센터까지, 순천의 문화를 나름대로 알릴 수 있는 가계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순천시가 향동에 만들고자 하는 이 문화의거리는 서울의 종로에 있는 인사동거리와 혜화동에 있는 대학로 거리를 벤치마킹 했다고 한다.

필자도 인사동 거리는 물론 혜화동 대학로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어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인사동은 지금도 수많은 내외국인들이 방문하고 한국을 소개할  귀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어 한국의 보물창고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역이다.

그리고 대학로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전에는 주말이면 마로니에 공원이 시작된 동승로 구간에서 혜화동 로터리 구간까지 차량통행이 금지된 지역이었다.

차가 없는 그곳 도로에서 수천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축제를 즐기며 막걸리 파티를 했던 대학시절이 지금도 생각난다.

특히 내가 다닌 학교는 인사동과 혜화동이 위치한 종로거리와 바로 붙은  명륜동에 있어, 학교에서 데모라도 하는 날이면 인사동 뒷골목에서 1차를 하고 다시 명륜동 학교 근처로 와서 혜화동로터리에서 2차 술을 먹었던 게 다반사였다.

80년대 당시 ‘데모’는 교내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라, ‘가투’라 하여 학교밖 도로에서 서울의 주요 대학생들이 ‘선배’로부터 오더를 받고 불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대상지역이 주로 ‘종로거리’였다.

종로거리에서 오후에 불시에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민주화구호를 외치며 전경부대와 백골단에 맞서 화염병과 깨진 보도블럭을 던지며 저항했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조성만 열사, 성균관대학교 김귀정 열사, 명지대학교에 재학중이었던 강경대 열사의 장례식도  종로에서 치러졌고 장례식이 끝나면 데모로 연결됐고, 데모이후에는 으레히 인사동 뒷골목 막걸리 집과 혜화동 근처 술집을 전전하며 밤새 술을 마신 기억도 있다.

그때는 그게 '시대의 표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종로와 대학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풍물거리였고 대학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의거리'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80년대 민주화를 향한 젊은 대학생들의 처절한 투쟁이 숨쉬고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고향에 정작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순천에도 그런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다고 하니 서울에서의 회한이 떠오르며, 그런 추억을 이곳 순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싶어 기뻤다.

그런데 최근 해당 지역 시의원과 '문화의 거리' 담당공무원간 일방통행로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의견대립으로 시비가 붙어 ‘억지고발’이 난무하고 있었다.

해당 시의원은 그전부터 시민운동을 해왔고 '순천시민의 신문' 기자출신이라 해당 지역구 사정에 누구보다 밝고 내부사정이나 그간 문제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으리라 판단된다.

그 의원을 만나보니 “본인이 기자시절, 순천시로부터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무려 9번의 고소를 당했지만 전부 무혐의처분을 받았다”며 아직도 순천시로 당한 분을 삭이지 못했고, 아마도 이번 고발 건에도 과거의 그런 악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시의원의 그런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치인이란 모름지기 고발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다독거려 일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인데, 이번 일은 너무 앞서 나간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인사동과 대학로를 떠올리며 기대했던 순천 '문화의 거리'가 출발도 하기 전 고발사태로 세간에 살벌한 이미지로 미리 덧칠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문화의거리' 조성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인 만큼  다소 오해가 있고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대화로 해결하는 문화풍토가 이번 기회에 조성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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