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 맹골수도 해역에 침몰한 세월호
잊을 수 없는 그날 “4·16” 진도 맹골수도 앞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한지 꼭 100일이다.

세월호는 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로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승무원 14명, 일반 승객 104명 등 476명(잠정)을 태운 채 인천항을 출항했던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실종자 10명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한채 현재도 진행형이다.

진도 맹골수도 해상에서 처음으로 조난신고가 접수되면서 비극의 서막이 시작된 지난 4월16일 8시52분께였다.

 ▲ 민간어선이 세월호 승객들 구조모습
이날 오전 9시30분경 목포해경 경비정 123함이 현장에 도착해 구조활동을 펼쳤으며 오전 11시께까지 민간어선과 해경의 합동작전으로 승객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구조 시작과 동시에 오전 11시20분께 "단원고 학생들 전원 구조"라는 문자메시지가 발송됐고, 침몰하기 시작한 세월호를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곧이어 완전 '오보'로 드러났다.

이날 전남소방본부는 안산 단원고 최덕하 군으로부터 “배가 기울고 있다”는 최초로 사고 발생 신고를 받았지만 해상 사고는 해양경찰 소관이라는 이유로 21분 뒤에야 소방본부헬기를 현장에 보냈다.

사고를 가장 먼저 감지해야 할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도 사고 발생 16분이 지난 오전 9시 6분께 목포해경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접하고 30분간 세월호와 단독으로 교신하던 진도VTS는 세월호의 침몰상태를 해경이나 소방본부 등 구조 당국에 알리지 않아 “생명줄”과도 같은 47분을 허비하며 “골드타임”을 놓치면서 해난 구조의 허점을 드러냈다.

세월호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으나 세월호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은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했을 뿐 별다른 조치없이 어린 학생과 승객들을 버리고 선장 및 일부 선원들은 선원이라는 것을 숨긴 채 자신들만 살겠다고 탈출한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샀다.

사고 발생 직후 해경은 세월호와의 교신도 원활하지 않았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함정 또한 선실진입을 시도조차 하지않으며 사고 현장만 맴돌면서 상황만 지켜보다 황금같은 골드타임을 놓쳐 정부와 해경의 부실한 초기대응으로 화를 키웠다.

이러한 초기 대응 실패로 서로 우왕좌왕하며 단 한명의 탑승객도 구조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해 희망을 갔고 믿었던 에어포켓의 존재마저도 시일이 지나면서 무의미해졌다.

서해해경청과 해경 본청 역시 현장보고를 받고도 선실 진입과 승객 퇴선 유도 등 기본적인 지시도 하지 않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재난 사건, 사고 발생 시 현장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인명을 구해야 할 기관이 안일한 사고와 근무 태만, 책임 회피 등 무능을 드러내면서 3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은 뒤집힌 배와 함께 물에 가라앉고 말았다.

4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를 찾아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밝혔고 무능함을 드러낸 해경은 '조직 해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받아야 했고 '해피아'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은 해양수산부도 조직 개혁이 불가피하게 됐다.

17일 본격적인 구조활동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은 온통 슬픔에 빠질 무렵 4월18일에는 구조됐던 강민규 단원고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슬프게 했다. 강 교감은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침몰 수역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을 메 세상을 떠났다.

 ▲ 비내리는 맹목항에 시신수습중인 소방대원들
4일째인 4월19일 처음으로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선체 2층 화물칸을 열고 선체에 처음으로 진입해 승객 시신 3구를 연이어 수습해 20일 확인된 사망자는 58명으로 늘어났고, 21일에는 87명으로 늘었다. 22일에는 121번째 시신이 수습됐고, 23일에는 오전에만 시신 25구가 수습되는 등 사망자가 150명으로 늘었다.

24일에는 오전에도 시신이 수습되면서 사망자가 크게 늘어 171명으로 늘어 이때를 기점으로 사망자의 숫자가 실종자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불과 3~4일만에 100여구의 시신이 수습되면서 단원고 학부모를 비롯한 세월호 탑승자 가족이 머물던 진도 팽목항은 비탄에 빠졌다.

시신이 수습되서 돌아올 때마다 자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는 부모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4월30일까지 수습한 사망자는 210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수습되는 시신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현재294명이 수습되고 사고해역의 기상악화로 더딘 수습으로 인해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실종된 10명이 구조의 손길을 기달리고 있다.

한편, 인천지검은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 특별수사팀과 해운비리 특별수사팀을 구성했고 부산지검은 한국선급 등의 비리에 대한 특별수사팀 수사를 시작하고 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 선주회사 임직원 및 실소유주 일가, 안전감독기관 관계자 등 121명이 입건됐으며 63명이 구속됐다.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73,청해진해운 회장)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4명과 측근 9명도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도피중인 유 회장 검거를 위해 22일 구속영장을 유효기간 6개월의 영장을 다시 재발부 받았다.

그러나 유 회장은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불과2.5㎞ 떨어진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오늘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20여명은 폭염 속에서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힘겹게 이어가며 여야가 특별법 제정에 유족 요구사항을 반영해 주길 바라면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김병권 대책위 위원장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며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 유족 등 피해자가 추천하는 자문단이 참여할 것과 특별위가 수사권 및 기소권을 갖고 엄정하게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진도 맹목항에 걸린 리본"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지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과 피맺힌 절규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잊지 않겠습니다”

7월24일 현재 아직도 진도 맹골수도 해역 차가운 바닷속에 실종자는 10명이 남아있다. 대한민국을 비통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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