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귀향길에서 어린 시절 국민학교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스 승

대산에서

해리로 가는 완행버스 희미한 실내등 불빛 속에는

낯익은 마을 사람들과

동창들의 모습이 보이고,

얼굴을 맞대며

한참을 더듬다가

마침내 토장국 흙냄새 같은 언어로

어깨를 두들기고 손을 잡아 흔들며

서로서로 따뜻한 살들을 부벼보고 있었다.

 

시장터에서 한번더 손님을 실었다

중절모를 쓴 노인네 한 분이 올라오고 있었다.

 

십리 못되는 학교 가는 길

가을이면 유난히도 코스모스 꽃잎이 고왔다.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오는 하교 길에서 언덕을 오르면 주막집이 있었고,

술을 마시는 아버님이 있었다.

선생님도 함께 계셨다.

 

선생님이 무섭고 어려웠던 난

주막이 보이는

코스모스길에서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아버님 손길에 끌려 다가갔을 때

요놈 고추 얼마나 컸냐시며 바지를 훑으는 선생님 손길을 피해

신작로를 엎어지며 자빠지며 도망치고 말았다.

껄껄껄껄껄 웃음소리가 합창을 이루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선생님을 만나면 도망가곤 했다.

고추는 얼마나 불알은 얼마나 .

선생님은 크고 있는 키는 묻지 않으셨다.

고추가 크고 불알이 여물어야 어른이 되는 거라면서

고추는 얼마나 불알은 얼마나.

그 사이 20년이 흘러가고 있었다.

 

완행버스 안 희미한 실내등 불빛 속에서 나는

선생님을 맞았다.

손을 잡고

몇 번을 이름을 부르고 되뇌시면서

오래도록 곁을 떠나 있던 얼굴을 쓰다듬고 계셨다.

노안(老眼)엔 짓무른 시디신 눈물이 고이고

막걸리 한 사발쯤 마신 입가엔 조금 벌어진 듯한 입매

인사를 여쭙는 수줍은 제자의 물음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래, 너도 잘 있느냐는 말씀뿐.

말보다는 눈을 코를 손을 발을 보며 어루만지는 것으로

묻는 질문엔 '그래그래' 라고만 하실 뿐.

 

우리 마을을 지나고 두 정거장 더

선생님 댁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선생님 댁을 향해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마을길에도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벼를 베지 않은 들판에 추석 달이 크게 가까웠다.

 

- 선생님

- 그래그래

 

잡은 손엔 따뜻한 체온

 

- 선생님

- 그래그래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래도록 만수무강하실 것을

고개 숙이는,

 

- 오냐, 그래그래

 

가다보니, 대문 앞에 아직도 서 계셨다.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아도 그 자리에.

동네 어귀를 벗어나 돌아보아도 그 자리에.

아득히 멀어졌을 이 나이에도 그 자리에.

 

- 선생님

- 오냐, 그래그래.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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