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적 환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봉건적 대한민국, 전근대적인 손님맞이

국내의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지인의 소개로 찾아왔었다. 그동안 중개회사를 통해 제품을 조금씩 수출해 왔는데, 이번에 꽤 큰 바이어로부터 직접 오더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바이어가 공장을 방문하겠다는데, 문제는 그 사장이 외국 손님을 한번도 직접 접대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장은 도무지 그 방면에 경험이 없는데다가 당장 식탁매너 등등 가르쳐 준다 한들 제대로 소화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어쩌면 회사가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는 일, 어떻게 해서든 바이어의 눈에 들어서 오더를 따내야 했다. 해서 테이블 매너 따위는 다 걷어치우고, 그 사장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기로 했다.

20여 일 후 드디어 바이어가 왔다. 저녁을 공장에서 접대했는데, 공장 2층 사무실 책상 일부를 한쪽으로 밀어붙여 파티장으로 꾸몄다. 가운데 책상 몇 개를 붙여 흰 천을 깔아 식탁으로 만들고, 사장의 가족은 물론 사원들 가족까지 동원되어 각종 떡과 직접 만든 음식을 차렸다. 식탁 가운데에는 바이어의 회사 로고 모양으로 꾸며진 꽃을 놓았다. 직원들이 맨 넥타이도 각자가 바이어 회사 로고에 맞는 색으로 골랐다. 가족들은 바이어 나라 국기와 비슷한 색의 옷을 골라 입고 나왔다.

파티는 순전히 한국식으로 먹고 마시며 무사히 잘 치렀다. 그리고 그 바이어를 호텔에 바래다주면서 사장이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속에는 미리 사진을 이메일로 받아 준비한 바이어 얼굴이 인쇄된 한국우표 20여 장과 항공우편용 봉투가 담겨 있었다. 당장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편지 써서 ‘나만의 우표’를 자랑하라는 거였다. 철저히 감동작전으로 나간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상상도 못했던 양의 오더를 받아 주야로 공장 돌리고 있다. (인터넷우체국의 나만의 우표: http://service.epost.go.kr:8080/mystamp.RetrieveMyPostagKindA.postal)

최고의 매너는 감동이다

한국의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손님을 맞는 방식이 전근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이어서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다. 직접 그런 경험을 한 사람(특히 외국인이거나 해외 활동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딱히 뭐라 하기 곤란한 은근한 불쾌감을 느낀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청와대 외빈 접대 풍경을 살펴보자.

손님이 접견실에서 기다리면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나와 악수한 다음 소파에 앉아 환담을 나누는 식이다. 여기까지가 포토세션이다. 이는 한국 사람에겐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그것이 일견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모든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기관장이나 회장님들은 그런 식으로 손님을 맞는다. 하지만 미국이나 프랑스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그런 식으로 손님을 맞는 광경은 없다. 거의 모든 나라가 한국과는 정반대다.

먼저 최고지도자가 접견실에 나와 자기 자리에 선 다음 손님이 들어온다. 그게 정상이다. 손님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인(host)이 손님을 기다렸다가 맞는 것이다. 그게 그것 같지만 기실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다. 현관이든 접견실이든 주인이 먼저 기다렸다가 반갑게 맞아들이는 것이 인격적 환대이지, 손님을 기다리게(아무리 짧은 시간이라 해도) 해놓고 저 할 일 하다가(마치고) 나오는 것을 환대라 할 순 없는 일이다. 환대가 아니라 (마지못해) 만나주는 꼴이다.

대통령이나 기관장, 회장님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약속을 정하고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찾아가는데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수차례 일어났다 앉았다. 거기에다 쩍벌남. 짜증이 안 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게다. 철저하게 갑(甲)이 되어 을(乙)을 짓누르는 방식이다. 갑을(甲乙) 개념만 있고 선진문명사회내 성숙된 사회적 인격체다운 주인(host) 개념은 전혀 없는 것이다.

글로벌적 시각에서 보면 이는 손님이 주인집에서 주인을 맞는 꼴이니 이런 넌센스도 다시없다 하겠다. 민주니 평등이니 하지만 대한민국은 원래가 그런 사회였다? 이런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두 손 악수, 고개 숙이는 것도 모자라 허리까지 굽히니 반미개인 혹은 하인 취급당하는 것이다. 글로벌 세계에선 공손, 공경, 감사의 표시를 눈으로 소통하며 말로 전한다. 부부(남여)유별, 장유(직위)유서에 따른 예절은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차별적 처사로 인식될 뿐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4일 청와대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정기 월례회동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고, 시선이 상대를 보지 않고 의자를 보고 있어 잘못되었다. 주인이 자기 집 안에서 가방을 들고 있어 나가려는 건지 들어오려는 건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식사하는 자리도 아니면서 테이블에 식탁보가 깔려 있다. 식탁과 접견용 테이블을 같이 쓰는 일반 가정집처럼. © 연합뉴스
 

아주 특별한 환대(호스피탈리티)

기회욕절화지후(機回欲折花枝嗅)
심공화상부정수(心恐花傷復停手)
춘풍가작고목화(春風可作枯木花)
추풍부작청춘화(秋風不作靑春花)
몇 번인가 꽃을 꺾어 그 향기를 맡고 싶었으나
꽃이 상할까 두려워 가던 손길을 멈추노라.
봄바람은 마른 가지에 꽃을 피울 수 있으나
가을바람은 청춘의 화려함을 주지 못한다.

수년 전 필자의 친구가 중국에 초청 강연을 갔을 때 강연장 벽에 걸린 위의 한시(漢詩)를 보고서 깜짝 놀랐었다고 한다. 고려 정몽주의 시가 아닌가! 중국 사신으로 갔을 때 그를 사모했던 한 젊은 여인의 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시로 알려져 있다. 윤창중이 진즉에 이 시를 알았더라면? 아무튼 너무도 반갑고 신묘한 일이라, 감격한 나머지 혼신을 다해 열강을 했는데, 관중들 역시 감동해 마지않아 열광하는 바람에 아주 인상 깊은 경험을 했었다고 한다.

예전에 꽤 높은 지위에 있던 분이 일본을 방문해서 재계의 거물급 인사와 중요한 일로 면담을 한 적이 있었다. 헌데 그 방에 걸린 족자 그림에 자꾸 눈길이 가더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인화(文人畵)였다. 기실 그에겐 고서화 수집 취미가 있었다. 아무튼 일을 마치고 귀국하려는데 그 회장의 비서가 공항까지 나와 배웅을 하며 회장님의 성의라며 작은 물건을 하나 건네주었다. 열어 볼 사이도 없이 받아왔다가 다음날 저녁에서야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방에 걸려 있던 바로 그 그림이었으니 말이다.

미국 수출입은행은 백악관 못지않게 세계 각국에서 온 개발도상국과 중진국의 차관도입 업무 관계자들이 줄지어 면담 차례를 기다리는 곳이다. 매일 아침 외빈예방 일정표가 수위실(경비실)에 내려가면 수위 한 명이 그 일정표를 보고 외빈접견실로 손수레를 밀고 가 벽에 걸린 액자와 소형 목가구 등 몇 개의 장식용 집기들을 싣고 지하실로 내려간다. 그곳 창고의 한 사물함을 열어 가져간 집기들을 넣어두고, 다른 칸을 열어 그 속의 액자와 집기들을 싣고 도로 접견실로 올라가 그 빈 곳을 채워 놓는다.

때로는 하루에 서너 번씩 외빈접견실 액자와 집기들을 바꾸기도 한다. 그곳 지하창고에는 백여 개의 사물함이 있는데, 각 사물함에는 각각의 국명이 ABC별로 적혀 있다. 외빈 면담 일정대로 맞이하는 손님 나라의 전통적인 그림과 집기로 교체하는 것이다.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일이라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달리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다.

한편, 지난 어느 정권 때 청와대 영부인의 내국인 접견실 사진을 보면 입식 티 테이블이 중국음식집의 대형 식탁테이블 사이즈만한 아주 큰 것으로 준비되어 있어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영부인께서 손님들이 당신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한 외국정상들의 부인을 맞는 접견실의 벽에 걸린 액자도 매번 같은 그림이었다. 방문하는 손님 나라를 연상시키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바꿔 걸라는 제안을 보내봤지만 대답조차 없었다. 감히 누가 영부인의 취향을 거스를 수 있으랴.

글로벌 매너 모르면 글로벌적 경영 불가

아무렴 튤립 농사만 지어 그렇게 잘살 수야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자본을 잘 굴리는 나라가 네덜란드라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역사적으로도 네덜란드 상인은 투자의 귀재들이었다. 현대 대부분의 금융제도는 이 네덜란드인들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여 년 전 네덜란드 재무부에서 프랑스 파리 소재의 국제기구 OECD로 파견 나가 있던 친구가 기한을 다 채우고는 재무부로 돌아가지 않고 사표를 냈다. 얼마 후 그는 네덜란드의료산업연금기금의 공동사장으로 들어갔다. 당시 600억 미국달러 규모인 어마한 그 기금에는 4명의 공동사장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연금기금은 매분기마다 운영위원회를 여는데, 이때 모건스탠리, 골드먼삭스, 메릴린치 등 세계 톱 금융회사들이 투자수익률 입찰서를 내고, 그걸 바탕으로 기금의 2,3%를 움직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움직이면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가 맡은 일은 당시 떠오르던 미국의 경제학자 크루그만 교수를 앞세우고 전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세미나를 열어주는 일이었다. 이미 뜬 학자들은 너무 비싸니까, 막 떠오르는 학자를 잡은 것이다. 낮에는 세미나를 하고 저녁이면 그곳 학자나 유명인사들을 초청해서 최고급 프랑스 와인을 곁들인 만찬을 즐기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국제술상무라고나 할까?

대체 그게 무슨 업무람? 우선 유망한 경제학자를 띄워주면서 더불어 자기 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 말하자면 윈윈 공생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마케팅의 일환으로 영향력 있는 세계의 석학들과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세미나와 만찬을 통해 세계 최고급 정보들을 취득하는 것이다. 그것도 우호적인 조언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토해낸 것들을. 이를 위해 들이는 최고급 와인과 경비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왜 그 친구였을까? 그가 OECD에 나와 일하다 보니 자신의 소속기관인 재무부의 낙후성을 알게 된 것이다. 하여 도저히 그곳으로 되돌아가 일할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OECD에 근무하는 동안 글로벌 내공이 쌓여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성장을 해버린 것이다. 큰물에서 놀다 보니 동네 작은 우물에서 더 이상 못 살게 된 거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2일 청와대를 예방한 존 케리 미국 국무부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중간에 차 탁자를 두 개도 모자라 뚝 떨어지게 벌려 놓았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먼 대담 간격일 것 같다. 그 떨어진 만큼 대통령의 권위가 더 올라갈까? © 연합뉴스
 

왜 손님접대(greetings and entertainment)에도 글로벌 매너인가?

새 대통령이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등 외빈을 접견하는 사진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혹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건가? 감히 접근을 금하는 권위주의 때문인가? 여성 대통령이라 당분간 ‘쩍벌남’ 대통령 사진 안 보게 되었다고 안심했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평소 소파에서 엉덩이를 뒤로 물리는 등 자세가 불안하기 짝이 없더니 기어이! 거기에다 이번에는 아예 중간 탁자를 하나 더 놓아서 상대를 멀찍이 떨쳐두고 접견하고 있다.

서로 가까이해서 긴밀한 대화를 나누려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처음 만나 두 손으로 맞잡고 어깨까지 맡겨 환하게 웃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청와대 안에서 하는 모든 회의에 마이크와 노트북이 없으면 안 될 만큼 크고 넓은 방에서 넓은 책상을 두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슨 인격적 환대니 소통이니 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게다가 대통령의 좌우 옆자리는 비워 둘 때가 많다. 홍보용 사진 찍을 때 당신 좌우에 아랫것들이 같이 찍혀 권위 있는 리더십 이미지에 흠이 가는 것을(?) 피함은 물론 누구도 가까이 붙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서울 핵안전보장회의 중 청와대에서의 한미정상회동.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듯 중간 탁자가 한 개였다. © 청와대
 

위기의 대한민국, 추락이냐 비상이냐

아들 부시 대통령은 42세 때까지 고향집에서 허구한 날 파티를 열어 술에 찌들어 살았다. 어느 날 신앙의 깨달음을 얻어 술을 끊게 되었지만 아무튼 그러면서 글로벌 매너, 글로벌 리더십을 익혀 사람을 환대하며 조직을 다루는 법을 터득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호스트(host)가 되어 파티를 주재하는 일이나 나라를 경영하는 일이나 매일반이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라면 방탕아 취급받았을 것이다.

세계의 정상은 물론 대통령을 예방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글로벌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인물임에는 분명한 일. 그러니 그들을 환대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업무라 하겠다.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면 대통령이 혼자 저녁 먹는다는 것은 곧 직무유기라 할 수도 있다. 박대통령은 평소 자신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했었다. 그 말이 없었다 해도 대통령이 되는 순간 사적인 것은 티끌만큼도 있을 수 없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갑(甲)의 횡포에 대해 박대통령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나무랐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최고의 갑(甲)이며, 대통령으로서의 의전 매너가 철저하게 갑적(甲的)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매너는 오히려 70년대 수준으로 되돌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형식적인 예우와 의전으로 제왕적 권위를 세울 것이 아니라, 정격 글로벌 매너로 세계의 리더들과 소통하며 자신은 물론 국가의 품격을 높여 나가야 한다.

▲ 반면, 박근혜 대통령을 맞는 오바마 대통령. 미 백악관 오벌 룸에는 두 정상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좌우 탁자 위엔 동양풍의 접시가 놓였다. 안타깝게도 박대통령은 예의 가방을 여기까지 직접 들고 와서 바닥에 놓았다. © 연합뉴스
 

아직도 잠이 덜 깬 ‘고요한 아침의 나라’

박대통령이 지난 5월 8일 아침 워싱턴 헤이 아담스호텔에서 열린 방미수행경제인과의 조찬에서 정몽구 회장에게 빵을 권했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미담인 양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헌데 이를 한국이 아닌 글로벌적 시각으로 보면 어떨까? 그 사진이나 기사를 본 세계인들도 과연 한국인들처럼 생각할까? 아니다! 오히려 박대통령의 무(無)매너를 나무랄 것이다. 연장자에게 멀리 있는 빵을 집어먹으라고 지시하다니!

글로벌 사회의 회의나 식탁에선 계급장이 없다. 식사에선 당연히 여성이 우선이고, 다음으로 연장자이다. 연장자든 연하든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거나 말로만 권하는 것은 명령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박대통령이 직접 빵 접시를 들어 상대의 면전에 바치며 권하는 것이 정격이다. 이왕이면 정회장은 물론 오른쪽의 이회장에게도 빵 접시를 돌려 권했어야 했다. 로컬 매너와 글로벌 매너의 차이라고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이 더 환대인지는 삼척동자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제발이지 수첩 내다버리고, 세세한 일 따위는 해당 장관들에게 맡기고, 전화통 붙들고 세계의 친구들을 불러들여 매일 오찬, 만찬을 열어야 한다. 빌 게이츠의 주머니 악수 따위는 웃으며 똘레랑스(관용)로 넘길 일이다. 그보다 더한 인물이라 해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일자리 몇 개라도 더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불러들여 만찬은 물론 댄스파티라도 열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글로벌 정격 매너부터 익혀야 한다. 기껏 초대해서 ‘어글리 코리안’을 광고할 순 없는 일이다.

▲ 첫 만남을 굳이 미국에서? 역대 가장 비싼 조찬이지만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어글리 코리안’의 대표적인 사진. 이건희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는 중에 박대통령은 정몽구 회장에게 빵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정회장은 박대통령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고, 구본무 회장 역시 딴 곳을 쳐다보고 있다. 모래알 집안이란 공연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대국민 언론보도용 사진 촬영을 위한 포토세션 때 사진기자단은 각별히 시선 통일을 주문해야 한다. [자료출처: 와인대사 안경환의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http://mrahn.kr)] © 경향신문
 

대통령이 바뀌어야 나라가 산다

새로 취임하면 멀쩡한 책걸상, 소파 새것으로 갈아치우는 기관장들. 자신의 집무실이나 응접실을 제가 좋아하는 수집품이나 ‘쩍벌남’ 권력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아마추어 골프대회 입상 트로피, 감사장, 기념패, 표창장 등등으로 가득 채운 ‘굽신남’에서 ‘나도 쩍벌남’이 된 사장님들. ‘좌빵우물’에 무슨 와인, 몇 년도 산이 어쩌구 하는 지식 아닌 상식 외우는 게 고작 와인 매너의 전부인 줄만 아는 오피니언 리더들.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할 곳을 못 찾아 고민하는 회장님들. 이제 글로벌 매너를 왜 제대로 배워야 하는지 이해 좀 했으면 한다.

국민소득 1만 불까지는 땀으로 가능하나 2만 불까지는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3만 불은 문화, 그리고 4만 불 이상은 품격이다. 고품격 매너가 아니고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정부가 아무리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창조 경제 부르짖는다 해도 일자리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리더의 사소한 매너 하나에 수만 개의 일자리가 왔다갔다 한다. 첨단 기술 확보에만 열을 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최고 품격의 매너를 갖추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기술, 문화, 품격을 동시에 축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진정한 경쟁력이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하겠다.

청와대부터, 대통령부터, 재벌 회장님들부터 정격 글로벌 매너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런 게 진짜 디자인이다. 상품이나 사옥만 디자인할 것이 아니라, 국가 경영, 기업 문화, 리더의 품격부터 디자인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달리 돈 드는 일도 아니다. 제대로만 배우면 오히려 돈 버는 일이다. 인생을 제대로 즐기면서 돈 버는 일이다. 그걸 왜 안 배우고 안 가르친단 말인가?

▲ 오바마 대통령에게 빵을 권하는 아프가니스탄 카르자이 대통령. [자료출처: 와인대사 안경환의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http://mrahn.kr)] © 백악관
 

품격이 돈이다!

인격적, 전인적 ‘환대(hospitality)’란 용어가 한국에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이전까지는 ‘서비스’란 말로 대충 갈음해 왔었다. 앞에서 말한 미국 수출입은행은 갑(甲) 중의 갑(甲), 즉 울트라 수퍼 갑(甲)이다. 그런 은행이 뭣하러 그렇게까지 환대할까? 힘센 자의 여유? 몸에 밴 친절? 약한 나라 고객에 대한 배려? 천만에! 기왕에 을(乙)들을 철저하게, 한푼이라도 더 털어내기 위해서다. 그것도 우아하게.

당연히 정몽주의 시(詩)가 원래 그 자리에 걸려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본 회장실의 족자 역시 의도적으로 걸어 놓은 것이겠다. 천박하게 쥐어짤 줄밖에 모르는 갑(甲)은 한참 하수(下手)다. 한국의 갑(甲)들이 진갑(眞甲) 진상(眞上)이 못되는 이유다. 품격으로 디자인할 줄 알아야 졸갑(拙甲)을 면할 수 있다. 최상의 디자인은 품격임을 깨달아 하루빨리 글로벌 청맹과니 신세를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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