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악수를 했다하여 결례라며 분개하는 국민들이 많다. 기실 글로벌 세계에선 그다지 흔한 장면은 아니지만 종종 있는 일이다. 특히 미국 사람들한테서 자주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처럼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고 앉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 해도 그 나라에서는 그 나라 예법을 존중하는 것이 정도인데, 아무튼 빌 게이츠가 한국적(동양적) 예법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는 평소에도 줄곧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닌다. 독선과 자만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한들 관료가 아닌 일개 성공한 기업가일 뿐이니, 개인의 버릇으로 여기고 그저 가볍게 넘기면 그만이겠다. 문제는 빌 게이츠가 아니고 박 대통령이었다. 지난번 존 케리 국무장관 예방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자신이 처한 위치가 문제였다. 시진핑이나 오바마 등 다른 국가 지도자들처럼 자신이 사진상 오른쪽에 위치했어야 했다. 그래야 사진에서 자신의 전면이 더 잘 보인다. 아마 그랬다면 빌 게이츠의 주머니에 넣은 왼손은 보이지도 않았을 게다.

▲ 빌 게이츠 회장의 예방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정장을 했더라면

자신의 안방에서 자신의 사진이 잘 나오는 위치도 못 잡다니 안타깝다. 혹 그동안 구부정한 전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위치를 바꾼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그 동안 필자가 내내 지적해온 박 대통령의 복장이다. 취임식에서부터 지금까지 입고 있는 옷은 정장이 아니다. 여객선 승무원들 유니폼처럼 보인다. 한국인들이야 자기 나라 대통령이니 그마저도 좋게 봐 줄 수도 있겠고, 그걸 굳이 개성이라거나 정장이라 우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냉정하게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대충 난감한 패션이다.

유럽에서 여성이 아무 신사에게 손등을 쑥 내밀면 상대는 거의 자동으로 허리를 굽혀 손등에 키스를 한다. 그만큼 습관화 된 매너다. 헌데 만약 그때 여성이 바지를 입고 있다면 신사는 움칫하다가 도로 허리를 펴버린다. 바지를 입은 여성은 여성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남성과 동등하게 여긴다. 만약 이번에 박 대통령이 고 대처 총리나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처럼 치마에 정장을 했더라면 아무리 빌 게이츠라 해도 저도 모르게 손을 주머니에서 꺼냈을 것이다.

박 대통령처럼 캐주얼풍으로 입고 나가면 대개의 서양인이라면 서로 격식 차리지 말고 편하게 얘기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빌 게이츠가 설사 잔뜩 긴장하고 왔더라도 순간 풀어지게 마련이다. 국민들도 이제는 로컬 매너와 글로벌 매너를 구분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해서 이번 일처럼 로컬 잣대로 빌 케이츠의 결례에 언짢아하기 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의 글로벌 품격은 과연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하인 ‘굽신남’코리아의 지도자급 인사들

유길준의 <서유견문> 회고에 의하면 보빙사 민영익은 미국으로 출장가면서 태평양을 건너는 배의 선실 속에서 일정 내내 유학 책을 읽으며 공자왈 맹자왈 하였다고 한다. 1883년 9월 18일, 뉴욕의 한 호텔 대회의장에서 미국 제21대 체스터 아서 대통령이 비스듬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마루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13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 나라 지도자들과 관료들은 허리, 어깨를 못 펴고, 고개를 들어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

수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에 개점한 한국백화점에서 점원들에게 한국식으로 ‘굽신인사법’을 강요했다가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직원이 무슨 하인이냐며 인격 모독이라 반발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끔 백화점에 가보면 마네킹처럼 잘 차려입은 여성들로부터의 기계적인 절받기가 내심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 인사법이 원산지가 일본인 수입산임을 기억하는 이들도 드물 만큼 이제는 한국화 되었다. 하찮은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일본이 개발한 친절법이다. 이를 당시 최고급 롯데백화점이 서울 소공동에 들어서면서 수입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일본을 따라잡아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던 시절이라 열심히 따라 해서 서비스업 전반으로 퍼져나가더니 결국 한국적 예절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했을 적에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이 허리를 똑바로 세운 자세로 김정일과 악수했다하여 남한의 자존심을 간신히 지켜낸 영웅(?)이 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을 대표하여 일부러 굽히지 않았단다. 그러니까 나머지 인사들은 모조리 김정일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는 딱 한 장뿐인 사진 하나로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어 다음 정권에선 국회의원, 이번 정권에선 청와대 안보실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남한 국민들은 ‘꼿꼿악수’를 두고 사관생도나 군인들만의 인사법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게 글로벌 선진문명사회권에선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서민들의 일상적인 인사법이다. 북한의 공산당 간부들은 모두 김장수처럼 악수한다. 악수할 때 허리 굽히고 고개 숙이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다(일본의 정치인 등 일부 저질 계층 포함). 하지만 그런 김장수도 그때 뿐, 남한에서는 그냥 ‘굽신남’이었다.

▲ 존 케리 미국무장관의 예방을 맞아 환하게 웃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지는 것 같다. © 연합뉴스

‘꼿꼿장수'는 없었다

얼마 전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에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했었다. 이때 기념사진 촬영용으로 악수하는 사진을 보면 영 어색하다. 케리가 박 대통령과 ‘왼손’ 악수를 하면서 오른손으론 박 대통령을 어깨를 다독이는 자세다. 박 대통령은 예의 버릇대로 자라목에다 두 손 모아 케리와 악수하고 있다. 유세 때 시장통을 누비며 아주머니들 손잡던 버릇이 고스란히 나온 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가 대통령인지 누가 일개 장관인지 구분이 안 간다. 게다가 우리의 대통령은 복장도 정장이 아닌 캐주얼이다. 역시나 모르는 이가 사진을 보면 크루즈선 사환인줄 오인하기 딱 좋은 유니폼이다.

아니나 다를까, 케리 장관이 박대통령에게 계속 질문을 하고 우리의 대통령은 거기에 꼬박꼬박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바람에 접견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다. 글로벌 정치세계에선 질문은 곧 공격이고, 거기에 일일이 대답해주는 것은 친절이 아니라 호구로 여긴다. 막말로 케리가 박 대통령을 가지고 논 것이다. 대통령의 접견은 그냥 사진찍기일 뿐이다. 몇 마디 덕담으로 예방을 마쳤어야 했다.

참고로 그런 질문에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를 잘 하는 민족이 있다. 바로 프랑스 사람들이다. 국제회의나 기자회견 등에서 쌩뚱맞은 질문이 쏟아지면 알건 모르건 절대 곧이곧대로 대답 안 해준다. 질문을 질문으로 맞받아친다. 재차 공격해도 역시 질문에 대한 질문의 질문으로 초점을 흩트려 상대를 헤매게 만들어버린다. 글로벌 세계에선 성실이 반드시 정답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 지도자들의 내공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 존 케리 장관이 시진핑 주석을 예방했다. 이때 시진핑은 미리 접견실 중앙(사진의 오른쪽)에 서서 케리를 맞았는데, 미소 띤 얼굴로 상대가 저쪽에서 걸어 올 때까지 미동도 않은 채 제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발치까지 다가오자 그제야 꼿꼿한 자세로 오른 손만 내밀어 악수했다.

그러자 예의 버릇대로 케리 장관이 좀 더 다가서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듯 왼손으로 시진핑의 어깨를 잡으려 들자, 순간 시진핑이 잡고 있던 오른손을 꽉 쥐면서 밀듯이 살짝 흔들어버린다. 이에 움찟 놀란 케리의 왼손이 막 시진핑의 윗팔뚝까지 올라갔다가 잡지 못하고 얼른 도로 내린다. 감히 까불지 말라는 거다. 친한 척 맞먹으려 기어오르는 케리를 한 순간에 제압해버렸다. 미국인들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사전에 철저히 대비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사실 시진핑이 주석이 되기 전에는 그 정도의 내공이 아니었다. 그도 본디 ‘쩍벌남’으로 오히려 다른 상무위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었다. 헌데 주석으로 최종 낙점되자 그때부터 몇 달 간 전문가의 개인지도 아래 철저하게 글로벌 정격 매너를 익혀왔다. 시진핑이 주석 취임 전 한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피격설 등 온갖 소문이 난무했던 것도 실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이번에 존 케리가 예전의 미숙한 시진핑으로 생각하고 박근혜 대통령처럼 다뤄보려다 한 방 먹은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바뀐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글로벌 정품격 모드의 아웅산 수치 여사. 국력과 품격이 정비례하지 않음을, 그가 왜 가는 곳마다 그토록 많은 인기와 환대를 받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사진이다. © 연합뉴스

북한이 남한을 우습게 보는 것도 남한의 어글리 코리안 매너에서 비롯

글로벌 매너가 뭔지, 그게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한국 사회에서 이번 존 케리 장관을 맞는 박대통령처럼 격에 맞지 않는 접견이 어제 오늘 만의 일도 아니고, 박대통령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실은 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 이 나라 지도자급 인사들 하나같이 그렇게 살아왔었다. 특히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관료세계에서 글로벌 매너는 거의 천민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정격 매너를 갖춘 북한 지도자들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성숙된 사회적 인격체 의식 제로에 가까운 남한 인사들을 모조리 사람이 아닌 비인격체, 즉 동물 수준 등식(等式)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시종일관 남한 사람들을 멸시하며 함께 대화 나누기를 거부하고 미국과 직접 담판하겠다고 고집하는 원인에는 앞서 예를 든 남한 지도자와 관료들의 수준 낮은 매너가 사실상 크게 한 몫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역대 지도부의 대 남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그렇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그런 글로벌 정격 매너가 평소 생활화 되었어야 하고, 모자란 것은 시진핑 주석처럼 취임 전에 철저하게 훈련받았어야 했다. 이는 공사(公私) 불문 모든 영역 지도자의 통과 의례이자 의무다. 하나같이 그런 준비도 없이 취임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의전 상의 허점을 노출시켜 국격을 떨어트려 왔다. 최고지도자가 그 모양이니 나머지는 보나마나. 국내에서야 그걸 제대로 알아채고 눈 여겨 보는 사람 많지 않지만 글로벌 무대에서는 여지없이 깎여나간다.

▲ 1975년 고건 전라남도 도지사가 세종로 청사에서 김종필 국무총리(왼쪽)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악수하고 있다. 당시 고건 지사는 정통 관료 출신으로는 최연소(만 37세)로 도지사에 임명됐다. 전두환 정권 아웅산 폭탄 테러 이후 이런 정품격 매너가 차츰 사라져갔다. © 국가기록원

눈으로 소통할 줄 모르는 한국인

인간이든 짐승이든 인사는 서로 간의 소통이 목적이다. 간혹 미개 부족에서는 동물들의 그것을 흉내 낸 인사법들도 있다. 현대 글로벌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인사법이 바로 악수다. 여기까지는 한국인들도 다 알고 있다. 한데 그 악수의 본질은 손잡음이 아니라 ‘눈맞춤(Eye Contact)’인 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악수란 그저 만남의 의례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활동 교섭 상대방 간에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대화할 수 있는 상대임을 서로 확인하는 인사법이다.

한국인들은 인사할 때 눈을 내리깔아야 공손한 걸로 인식하는 오래된 습관 때문에 평소에도 상대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한다. 꽤 글로벌적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이게 잘 안 된다. 인사할 때는 물론, 악수할 때, 면담할 때, 심지어 스피치 중에도 상대를 똑바로 주시하지 못한다. 심지어 눈길을 마주치는 것은 윗사람에겐 불경으로, 낯선 사람에겐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이런 습관은 글로벌 매너 교육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나아가 한국인들이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배려심이 부족한 원인이 되고 있다. 때문에 제대로 속내를 터고 소통할 때까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된다.

전근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소통 부재, 소통 불가한 전통적 인사법만을 고집한다면 글로벌 사회에서 언제나 변방 취급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사회에서 모든 매너는 똑바른 몸자세와 눈맞춤에서 시작된다. 이를 인격(人格)과 짐승격, 시민과 노예(천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아왔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 글로벌적 인식이다. 나머지는 그를 위한 형식일 뿐이다. 한국인들은 이 두 가지 모두가 안 될 뿐 아니라 아예 이해와 인식조차 없다.

▲ 자라목을 하고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손을 보고 악수하는 이명박 대통령. © 연합뉴스


▲ 자라목으로 상대의 손을 보고 악수하러 가는 이명박 대통령 부부. © 연합뉴스

악수할 땐 상대방 손을 보지 말고 눈을 봐야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악수를 하면 습관적으로 저도 모르게 눈을 내리깐다. 상대가 갑(甲)일 경우에는 공손과 복종을 표시하기 위해 그저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못 올려 죄송스럽다는 듯 허리 굽히고, 어깨 움츠리고 고개 숙이고, 두 손까지 모아 악수를 한다. 지난 대선 유세 중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던 서울대 조국 교수가 그런 식으로 악수를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인사법으로 서양식에다 한국식, 일본식까지 합쳐 가장 공손한 인사법을 만들어 낸 게다. 하지만 이를 글로벌적 시각에서 보면 세상에서 가장 비굴하고 천한 인사법이 되고 만다. 우물 안에서야 동방예의지국이라 자화자찬하지만 밖에서 보면 동방천민지국일 뿐이다.

더욱 희한한 사실은 이러한 오류를 글로벌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전혀 의식 못한다는 것이다. 정품격 인사법 클리닉을 20년 넘게 진행해온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국제 비즈니스에 다년간 종사해온 한국인들의 인사법을 보면 이들이 외국인의 눈 아닌 손을 보며 악수하고 있는데도 정작 본인들은 눈을 보며 악수하고 있지 않느냐고 완전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각하게 살펴 들어가 보면 상대방을 마음의 시야 밖에 두고 좀비처럼 건성으로 인사하는 천민의식이 몸에 아예 체화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 부시 대통령의 손을 보고 악수하는 노무현 대통령. © 연합뉴스

▲ 후진타오 주석의 손을 보고 악수하는 노무현 대통령. © 연합뉴스
글로벌 세계에서 자라목은 하인 취급

한국인들이 흔히 하는 약식 인사법인 목례 또한 엉거주춤하기 짝이 없다. 턱을 당기고 상대를 주시하고 ‘눈~방긋’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턱을 앞으로 쭉 내밀어 고개를 낮춘다. 인사를 받는 쪽에서도 그에 동조되어 같이 턱을 내밀어 고개를 까닥인다. 그 버릇대로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면 자동적으로 턱이 따라 나가고 상체도 앞으로 기운다. TV개그프로의 소재가 되고 있는 지금 박대통령의 인사법이 그렇다. 목례(目禮)는 눈인사이지 목(고개)인사가 아니다. ‘눈방긋’을 말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누구도 그런 식으로 고개를 까딱거린 적이 없다.

허리는 굽히다 말고 어깨를 움츠려 목을 앞으로 빼는 바람에 품격이 떨어져 더욱 천해 보인다. 게다가 상대의 손을 쳐다보는 바람에 고개까지 숙이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랬다. 이런 자라목 인사법이 부지불식간에 한국적 전형으로 굳어져버렸다. 바로 이런 자세 때문에 한국의 유명 배우나 스포츠 스타들 누구도 글로벌 상류층 사교 클럽에 끼어들지 못할뿐더러 그 흔한 글로벌 광고모델 하나 못 따내는 것이다.

글로벌 정격 매너에선 절대 고개나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 당연히 눈을 내리깔아서도 안 된다. 눈길을 피하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거나 스스로 격을 낮추는 것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이후 사람대접 제대로 못 받는다. 턱을 내밀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자라목 인사법은 짐승격으로 취급한다. 해서 그런 사람을 하인 다루듯 해도 결코 실례가 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상식이다. 그런 한국인들을 선진 주류사회의 리더들이 그동안 지위나 업무 때문에 마지못해 상대해준 게다.

전 현직 대통령의 예에서 보듯 한국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하나같이 자라목이다. 더욱이 체화된 식민사대 근성 때문에 미국인 앞에서는 이 현상이 더 심해진다. 전통적인 예법에 따라 허리 굽히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이 곧 공손함이라 단정하는 것은 자칫 국제사회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나라에서 허리나 고개 숙임(일왕 가족들은 허리는 숙이나 고개는 절대 숙이지 않을뿐더러 눈은 상대방을 향해 미소를 담아 주시한다)은 공손함이 아니라 비굴이다. 글로벌 무대에선 달리 표현해야 한다.

▲ 대한민국 지성을 대표하는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와 문재인 후보. 초등학교 시절 은사를 찾은 대학생 같은 모습. © 연합뉴스
 

대한민국 국격이 국력과 비례하지 못하는 이유

눈은 마음의 문이다. 인간만이 눈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해 낼 수 있다. 인격체는 똑바른 자세에서 눈으로 인사한다. 지나치게 굽히거나 고개를 숙이는 것은 자신이 없거나 본심을 숨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통식과 글로벌식을 합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매너. 명절이나 제사 등 특별한 행사에 사용되는 로컬 예법은 글로벌 무대에선 맞지 않다. 스스로 격을 낮추는 겸손함은 오히려 소통의 걸림돌이 된다.

상대의 손을 놓칠까봐 걱정하지 말고, 상대의 눈길 놓치지 말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해야 한다. 절대 허리 굽혀서도 손을 쳐다보아서도 안 된다. 손을 보는 순간 ‘상것’으로 격이 떨어진다. 인사는 손이 아니라 ‘눈스마일'이다. 손이 아니라 눈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자세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만면에 미소를 띠우고 줄곧 상대의 눈길을 놓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정격 매너이다. 그래야 소통이 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처럼 자신의 생각과 매너를 바꾸는 것은 공(公)의 자세이고, 박근혜 대통령처럼 자신의 것을 고집하는 것을 사(私)의 자세다. 사적(私的) 신뢰를 고집하는 것은 독선이다. 구한말 김홍집 총리대신의 조선책략 문호개방 시도에 대한 당시 수구세력이었던 영남 유림의 만인소 대거 집단 상소처럼 대통령에 보내는 집단적 사적 신뢰 또한 독선에 다름 아니다.

‘바꾸는’ 것이 곧 개혁이고 혁신이고 창조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예법에도 절제와 개선이 필요하다. 때와 장소를 가려 글로벌과 로컬을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공적 의전에서는 반드시 글로벌식을 따라야 한다. 이젠 글로벌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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