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보선,   '백만민란'의 주인공 '문성근'이  '국민의 명령'으로 카피를 바꾼 이유?

4.27순천국회의원 보궐선거 현장에 '백만민란'의 주인공 문성근이 온다고 한다.순천보선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 김선동씨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문성근은 '백만민란'이란 카피를 사용해 이명박 정권타도를 외치며 지지자들을 흡수한 역할을 톡톡히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백만민란'이란 카피에서 품어져 나오는 반역의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국민의 명령'이란 카피로 바꾸었다. 

카피 중에는 쓸 카피가 있고 쓰지 않아야 할 카피가 있다. 문성근이 애당초 사용했던 ´백만민란´ 카피는 코메디다. 6.25 때 남로당 당수였던 박헌영이 사용한 ´백만봉기´라는 카피의 짝퉁이기 때문이다.

문성근이 이 사정을 알고 썼다면 그 스스로가 '종북형 인간'임을 자처한 꼴이고, 모르고 썼다면 무식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문성근의 이 카피는  어느 경우든 득될 게 없다. 득될 게 없는 카피를 쓰고 있으니 이 또한 코메디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1948년 10월 19일 발생했던 이른바 여순사건으로 인해 아직도 반역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순천에서 말이다.

잠시 박헌형이야기.

박헌영은 월북했다. 동반 월북한 여자가 이 모라는 코뮤니스트이다. 이 촌스런 여자를 버리고 윤레나 라는 꽃다운 처녀랑 결혼했다.나중에 이 모 여인은 나중 박헌영의 재판 때에 "미제의 간첩"이라는 핵심 증언을 한다. 

 
사진은 박헌영과 일제 때 첫째 부인이었던 주세죽이다. 그리고 그 둘사이의 소생, 아마 원경스님일 것으로 추정된 얘를 안고 있다.

 주세죽은 당대의 미인이었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대찬여자로 갸름하고, 콧대가 갸름하고 길고, 눈이 시원하고, 당시의 여자외모로는 드문 얼굴이다.

일제때 박헌영이 체포되자  주세죽은 코뮤니스트 남자 동지, 아마도 김단야와 소련으로 도주해 그곳에서 둘이 결혼했다.

김단야는 스탈린이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할 때 죽었다. 주세죽은 카즈흐스탄인가에서 쓸쓸히 늙어 죽었다. 스탈린이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한 이유는,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박헌영은 그뒤 윤레나와 재혼했다. 그들 박-윤 커플은 김일성-김일성의 정부, 슈티코프와 조선인 정부,이렇게 3쌍이 화기애애애한 모습을 찍을 정도로 서로간에 친했다.

사진은 윤레나와 박헌영과 그 사이의 아이이다. 이 아이는 지금 아마 러시아에서 살고 있을 게다.

스탈린이 남침을 결정하자, 박헌영은 충성을 다해, 김일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남침을 지지한다.

그래서 박헌영이 뽑은 카피가 ´백만봉기´이다. 밀고 내려가면 남한 사람 백만명이 무장 봉기한다는 호언장담이었다. 말하자면 당시 실제적 북한 지배자였던 스탈린-슈티코 앞에서 김일성-박헌영 사이에 충성경쟁이 벌어진 셈이다.

박헌영이 이렇게 밀어 부치니 김일성도 그에 뒤질 수 없었다. 그래서, 6.25 때 북한의 모든 정규군을 낙동강에 집결시켰던 게다.

한반도는 해안의 길이가 대충 1500 마일이 넘는다. 미군은 당시에, 세계 무적의 공군, 해군, 상륙군(해병)을 가진 나라였다. 지금도 상륙군(marine corp)을 따로 운영하는 매우 예외적인, 공격력 중심의 군사 편제를 가진 군대가 미군이다.

맥아더 HQ의 관점에서 보면, 남포, 인천, 군산, 원산, 묵호 등 약 다섯 군데 정도의 ´목 좋은 상륙 후보지´가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끊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슈티코프-김일성-박헌영은 모든 정규군을 낙동강에 집결시켰다. "올테면 와라. 백만이 봉기한다!" 그러나 백만은 봉기하지 않았다. 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을 통해 군대내 좌익 세포조직은 척결됐기 때문이다.

미군이 인천 상륙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허리가 동강나고 북한 정규군 전체가 괴멸했다.

그 사령관이 바로 김일성의 죽마고우인 김책으로서 이때 전사했다. 김일성은, 김책의 원혼을 달랜답시고나중에 북한 최고의 공대인 김책공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백만봉기'가 좌절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에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제주도 4.3 사건을 진압하라는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여수 14연대의 지창수 등이 주동해 장교를 쏴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순식간에 순천까지 점령하고 그와중에 무고한 양민들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이다.

당시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남한군대내 남로당조직이 세포조직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반란군과 토벌군 사이에 1주일간 치열한 교전이 있었고 마침내 토벌군의 승리로 반란군은 제압됐다. 그와중에 억울한 희생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은 여순사건을 계기로 군대내 기생하고 있던 남로당 세포조직을 척결했다.

만약 당시 여순사건이 없었더라면 6.25전쟁때 북한군에 가세한 남한군대가 봉기했을 것이다.그러나 6.25 전쟁중 남한군대에서 단 1건의 봉기사례도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여순사건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좌익세력이 척결된 사실을 간과한 박헌영은 북에서 김일성과 소련 슈티코프에게 북한이 남한으로 쳐들어가면 남한의 백만명이 봉기하고 나설 것이다며 전쟁을 부추긴 것이다.

박헌영을 미제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것은 실은 ´백만봉기´ 호언장담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잘 나갈 때는 동지이지만, 어려울 때는 숙청으로 그 책임을 반드시 문다는 데 있다.

이번 순천보선에 나선 박상철,조순용,구희승,허상만,허신행 후보들도 혹시나 민노당 김선동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이번 보선에서 당선된다면, 그 이유가 이들 후보들의 탈당이라는 '해당행위'에서 비롯됐다며 그 책임을 물어, 복당이 쉽사리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유의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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