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트집잡기가 좋은 벌이 혹은 출세의 수단이 되고 있다. 더없이 천박하고 적나라한 선동질이 공식문화가 될 정도로 전복의 아카데미즘이 확산되면서 괴짜 예술가, 독설가, 소외 집단, 패륜적 반항아 등 유행에 민감한 자들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스스로의 '예의 없음'을 무기로 추방자 혹은 배교자인 양 처신하여 돋보이도록 하면서 저주의 후광이 자신에게 내리도록 한다. 저마다 독특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건 훌륭한 자기 격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문인, 대학교수, 저널리스트, 연예인, 정치가들이 경계선에 서서 한 발은 안쪽에, 다른 한 발은 바깥쪽에 둔 채 자신은 철저히 외부에 머문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안전한 참호 속에 숨어 망을 보는 급진주의자들로서 확고한 지위와 명성이 가져다주는 온갖 혜택은 다 누린다. 민주주의는 허용된 불평의 체제가 아니던가? 불복종 속물근성의 너절한 망토 밑으로 프티부르주아의 속옷이 살며시 내비치고 있다.

정치는 순결이 아닌 불결의 공학이라 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굳이 법정선거비용의 절반만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언하고 280억 원의 국민펀드 모집에 들어갔다. 그야 당연히 무소속이니 다른 거대 정당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갈 것이다. 해서 단일화의 전제조건에 끼워넣어 민주통합당이 선거 후 받게 될 보전금을 반타작하자는 복안일 것이다. 그러니까 문 후보에게 지게 되면 자신의 선거비용을 전가시키고, 반대로 자기가 이겨 공동후보가 되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선거비용만 책임지겠다는 구실을 미리 만들어 놓자는 거다. 여러 건의 M&A를 해본 경영자 출신다운 전략이다.

‘국민의 뜻'이면 만사형통?

안철수 후보는 8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은 자리에서 “스스로 개혁안을 내놓을 때”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에다 요구하듯 "네 죄를 네가 알렸다?"며 반성문 써내라고 협박하는 꼴이다. 가는 곳마다 이래라 저래라, 마치 대통령이 행정지침을 내리는 것 같다. 그의 '통큰 형님'다운 행보가 과거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이나 북한의 김정은을 보는 듯하다. 돌발적이고 불만 가득한 그의 말투는 ‘어게인 노무현’으로 나온 문재인 후보보다 더 놈현스러워 보인다.

그는 입만 열면 ‘국민’이다. 하지만 이 ‘국민’이란 말은 본디 후보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다. 후보 시절 ‘국민’을 들먹이기 좋아하던 정치인 치고 나중에 되고 나서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는 인간 없었다. 상식과 비상식, 순결과 불결, 구태와 혁신, 진심과 거짓으로 국민을 편가르기 해놓고 상대편을 기분 나쁘게 하는 묘한 재주를 지닌 그가 어찌 '국민'의 뜻을 들먹인단 말인가? 정히 쓰고 싶으면 ‘일부 국민’ 혹은 ‘지지하는 국민’이라 해야 맞다.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인지 연대인지 하겠다는 다급하게 만든 공동발표문도 이런저런 교묘한 말장난으로 분장을 하다가 겨우 말미에 구체적인 안을 하나 덧붙였는데 그게 투표시간 연장이다. 두 진영 모두 본심은 그것이었던가 보다. 언제는 ‘나쁜 선거’ 운운하며 투표하지 말자고 난리를 피우더니, 이번에는 무슨 마음으로 투표시간까지 연장하자는 것인지? 자신에게 불리할 땐 구태정치라 몰아붙이고 유리하면 신정치라 떠벌리며 뜯어고치겠다는 건가?

투표 시간 연장이 선진정치?

대개의 선진국들은 한국처럼 투표율이 높지 않다. 사회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정치의 영향력과 정치에 대한 기대가 줄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투표 기권을 참정권 포기라거나, 국민의 의무를 저버린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탄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기권도 적극적인 의사 표현의 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정치인들도 이들 움직이지 않는 중간층, '말없는 다수'의 시선을 더 어려워한다.

한국 정치가 성숙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의 권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정치에, 그리고 선거에 관심이 많은 만큼 참여율이 높아질 것이고, 그만큼 권력에 강한 힘을 실어주게 된다. 절대적 지지가 절대 권력을 낳는 법. 결국 국민들은 자신이 보태준 그 넘치는 힘에 의해 핍박받고 우롱당하는 것이다.

공산 독재국가에서는 당연히 100% 투표에 100% 찬성이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수록 참여율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제대로 민주국가, 선진국이 되려면 투표율부터 떨어트려야 한다는 성급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강한 권력일수록 스스로를 개혁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선거 때만 보이는 과도한 관심보다 평소 정치에 대한 관심과 감시, 그리고 질정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참여정치라 하겠다.

거꾸로 가는 정치혁신?

지난 14일 안 후보측은 문 후보측이 유불리를 따지고 농간을 부린다며 단일화 논의를 중단했다. 단일화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한쪽이 삐쳐 협의를 중단 하니마니를 두고 티격태격 한 합을 겨루고 본격적인 단일화 작업에 돌입했다. 비록 예상치 않은 일도 아니라지만 그 트집잡기가 너무도 유치하고 상투적인 데다가 빙빙둘러 배배꼬는 말장난은 가뜩이나 성질 급한 국민들 염장만 질러대고 있다.

유불리 안 따지겠다고?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군주가 나오려나? 설사 두 후보가 유불리에 흔들리지 않고 양심적으로 공정하게 단일화한다 해도 민심의 쏠림은 어찌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해야? 그렇게 순진한 척하면서 투표시간은 왜 연장하자고 할까? 물론 명분이야 일용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서라지만 그 속내를 누가 모르랴. 단일화해도 정권교체를 자신하지 못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대진표 다 정해 놓고 시합 직전에 룰 바꾸자고 생떼쓰는 꼴이다. 정히 투표 마감시간을 늦추든 투표일을 이틀, 혹은 사흘로 늘리든 그 적용은 다음 선거부터여야 한다. 당장 고쳐 자신들부터 적용받겠다는 건 누구에게서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고작 그런 상식과 양심이라면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 중임 개헌도 자기부터 적용하겠다고 하지 않겠는가? 꼼수와 얌체근성으로 새정치? 기실 이런 생떼쓰기만 없애도 한국정치는 절로 선진화될 것이다.

아무렴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후진국도 개발도상국도 아니다. 그러니 더 이상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 투표를 안하는 것 또한 국민의 권리. 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까지 정해줬는데도 투표 안하거나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유권자들 이제 정치견습생이 아니다. 차라리 이참에 우리도 OECD회원국답게 모든 투표일을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정하자. 자신의 참정권 행사를 위해 휴일 일부분 내놓기를 마다하지 않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발돋움하자는 말이다.

안철수의 수읽기와 버티기

아름다운 국민 감동? 이미 김이 다 빠져버렸다. 결국 당대표와 지도부를 퇴진시키는 걸로 안 후보 비위 맞춰주고 단일화 협의를 재개했지만 역시나 또 트집잡기로 점입가경이다. 이런 식이라면 설사 약속대로 단일화했다 한들 예전 노무현-정몽준처럼 언제 판을 깰지 알 수 없는 일. 이번에 가슴 철렁했던 민주통합당은 끝없이 굴욕을 감수하며 질질 끌려다녀야 하고, 단일화 지지자들은 투표 마감시간까지 조마조마 가슴을 졸여야 할 것 같다.

살신성인? 백의종군? 차포(車包)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문재인 후보, 점점 안(安)의 그물에 말려드는 형국이다. 미리 전화 언질을 받은 당 안의 졸(卒)들은 여차하면 철수당으로 해쳐모일 준비를 마치고 효시(嚆矢)가 날아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권교체, 정치혁신을 위한 구국의 선택이라 둘러대면 무조건 정의가 되는 시대 아닌가? 안 후보는 떨어지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틸 것이다. 단일화 방안으로 실랑이 벌이며 끝까지 새정치니 정권교체가 우선이니 하는 ‘아름다운’ 말만 되풀이 할 것이다.

결국 안 후보의 계획대로 담판만 남았다. 그는 애초부터 양보할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그럴 것 같으면 출마하지도 않았다. 문 후보도 양보하는 것은 자신을 선택한 당과 국민들에 대한 배임죄에 해당한다며 양보 가능성을 일축했다. 협의가 재개되고 TV토론, 담판회동으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결국 버티기 시합이다. 그러니 담판의 결과는 뻔하다. 서로 책임회피를 위한 명분만 고집하다 끝날 것이고, 단일화는 후보등록 후로 넘길 것이다. 그렇지만 만사불여튼튼, “단일화해도 박 후보를 이기기 쉽지 않다”며 안철수 없인 결코 정권교체 없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주지시켰다. 지금 국민들은 말싸움의 진면목을 신물나게 감상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받아넘기기

문 후보는 괴팍스럽고 독선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이다. 해서 노무현의 판박이 안철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간 자신의 포용적 이미지 만들기 위해 안철수 후보에게 수없이 엎드렸다. 그 덕분에 이제는 지지율이 안 후보를 넘어섰으니 그 아니 고마울쏘냐. 둘이 싸우면 약하거나 약한 척하며 당하는 쪽에 편을 드는 한국인의 정서를 안철수를 통해 십분 얻어낸 것이다. 결국 안철수를 감싸다가 맞아주는 시늉을 함으로써 '착한 삼촌'이 된 것이다. '착한 철수'는 간 데 없고 '버릇없는 조카'만 남았다.

이번 담판으로 안 후보의 항복을 받아내도 좋고, 결렬되어 후보 등록일을 넘기더라도 계속 안 후보를 끌어안고 달래는 시늉을 하며 덕장(德將)의 면모로 자신의 진정성을 국민들에게 자랑할 수 있으니 그도 내심 싫을 이유가 없다. 또 계속해서 단일화 이슈를 물고 늘어져 박근혜 후보와의 정면대결을 피해 가면서 정치쇄신에 대한 가능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도 있다.

안 후보를 끝까지 불쏘시개로 소진시키겠다는 거다. 단일화해서 두 남자가 한 여성 후보를 공격했다간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양측 모두 말로는 "모든 걸 다 걸고 단일화를 성사키키겠다"고 계속 떠빌린다. 해서 만일의 경우 단일화가 무산돼도 책임이 결코 자신에게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반복 강조하는 거다. 또 문 후보는 만약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은 협력은 하되 아무 관직도 맡지 않겠단다. 그러니 안철수 후보도 그래야 한다는 사전 경고다.

굿바이 안철수!

안철수 후보가 비록 머리가 좋고 의사, 기업가, 교수로서의 남다른 경험을 가졌으며 바둑고수답게 수를 잘 내다본다 해도 산전수전 다 겪은 변호사 출신에 비하면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담판 결렬로 안철수 후보가 새정치 운운하며 독자적인 길을 간다 해도 돈에 민감한 안철수 후보가 새 정당을 만들어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리가 없다. 용케 이번 선거비용만 건져도 다행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동메달엔 관심 없다. 일단 단일화에 실패하면 3위 후보는 가속적으로 떨어지는 지지율에 결승전 분위기 망친다는 국민들의 눈총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경우 분명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국민들은 안철수라는 사람을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5년 후? 글쎄, 그건 그때 가서! 출마하지 않고 그저 한국정치판을 예의 주시하겠다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지금쯤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가히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무관제왕(無冠帝王)으로서 평생 상왕 노릇 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절대반지 대신 사금파리! 조커 패를 끝까지 쥐고 갔어야 했다. 진즉에 은둔기인 이외수(李外秀)에게서 그 수를 배웠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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