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사당리 43호 사적지 발굴 현장설명회

전남 강진군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6월 27일부터 대구면 사당리 43호 고려청자 요지(사적 제68호)의 발굴조사를 완료하고 오는 20일 현장에서 공개설명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강진군 대구면의 사당리 일대는 고려시대 청자 생산의 성지(聖地)로 가마터가 대규모로 밀집 분포하고 있어 일찍부터 그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그러나 많은 가마터의 분포에 비해 학술적인 발굴조사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따라서 체계적인 학술적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구조와 규모 등 가마의 성격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유적의 효율적인 관리와 활용 방안을 비롯한 체계적인 정비와 복원을 할 수 있는 학술적 자료를 마련하고 동시에 문화자원과 교육자료로 활용하고자 이번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국민들에게는 강진 고려청자 요지의 중요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며, 외적으로는 세계가 인정하는 강진 비색청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1994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강진 고려청자 요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적 토대를 마련하는 조사이기도 하다.

이번 조사 결과 청자 가마 1기와 폐기장 1곳, 유물 구덩이 2곳, 숯가마 1기 등의 유구가 조사되었으며 실패되어 폐기된 많은 양의 청자를 비롯하여 갑발(케이스)과 도지미 등 다양한 요도구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청자 생산의 가장 핵심 시설인 가마는 고려만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자랑하였던 고려 중기 비색청자의 가마구조가 최초 확인되는 쾌거가 있었다.

가마의 앞부분인 요전부와 아궁이, 봉통부(연소실), 불턱, 번조실, 그리고 가장 뒷부분인 초벌칸 등이 완벽하게 확인되었다.

가마의 형태는 장타원형에 가까우며, 구조는 전체가 1칸으로 이루어진 단실 오름 가마로, 갑발과 진흙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전체 규모는 길이 20m, 너비 180㎝, 경사도 13~15°이다.

불꽃이 연소되는 봉통부와 그릇을 놓는 번조실 사이에 설치된 불턱의 경우 갑발을 이용하여 높이 55㎝로 거의 직각으로 축조하고 있는데, 이는 강진 지역의 가마도 비색청자 시기가 되면 안정적인 고온의 불심을 얻기 위해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였음을 알려주는 시설이다.

이를 통해 강진의 청자가마에서도 필요한 경우 외래의 기술을 받아들여 고려만의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또한 번조실은 가마가 폐기된 후 무너진 천정을 제거하고 인위적으로 매립한 흔적이 확인되는데, 이는 중국의 관요(官窯)인 여요(汝窯)에서도 확인되는 관행으로 향후 다른 지역의 사례와 비교하여 이곳 대구소의 가마 운영 실태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고려만의 전통적인 진흙 가마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초벌칸이 최초로 완벽하게 확인된 것은 이번 조사의 가장 큰 학술적 성과이다.

초벌칸은 가마 끝자락에 위치하며 방형의 형태로 만들었는데, 경사를 이루며 올라온 번조실 바닥보다 깊게 파서 축조하여 구조가 잘 남아 있어 가마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였다.

초벌칸은 바닥에 갑발편을 편평하게 깐 다음 그 위에 성형한 날그릇 놓고 굽고 있다. 초벌은 중국과 차별화된 고려청자만의 독특한 번조방법으로 그것을 구웠던 구조가 최초로 뚜렷하게 확인되어 비색청자의 생산 비결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된다.

출토 유물은 고려 중기 비색청자를 비롯하여 후기의 상감청자까지 고루 출토되었다. 특히 전모가 밝혀진 사당리 43호 가마터의 폐기장(길이 770㎝, 너비 620㎝, 깊이 80㎝)에서는 비색청자 생산지의 면모를 과시하듯 양질청자에 반드시 필요한 많은 양의 갑발을 비롯하여 매병과 베개 등 다양한 청자가 출토되었다.

특히 고려 중기 비색청자 시기를 대변하는 음각앵무문과 팽이형 잔을 비롯하여 양질 청자를 균일하고 다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틀(陶范)로 무늬를 찍은 압출양각무늬의 그릇들이 함께 출토되어 사당리 43호 가마터가 고려 중기 전성기의 비색청자를 생산하였던 가마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외에 주변에서 숯가마터가 확인되었는데, 확인된 유형의 숯가마는 그동안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가마터 주변에서 확인되어 조선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고려시대에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공하였으며 숯이 자기 가마터에 어떻게 사용되었을 것인지에 대한 연구과제 던져주고 있다.

사당리 43호는 청자요지는 지형이 잘 남아 있고 유적과 퇴적층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그동안 완전한 구조가 확인되지 않았던 고려청자 가마의 구조와 형태 등 성격을 밝히는데 많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유적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완벽하게 평면 구조를 보여주는 가마터가 확인되어 향후 고려청자 가마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또한 그동안 가마 구조와 크기가 불분명하여 정비와 복원 등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향후 이러한 측면에서도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강진청자박물관 경내와 인접하여 있어 유적이 정비된다면 국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데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함께 출토된 청자들은 고려중기 12세기 중후반 전성기 비색청자의 성격을 갖추고 있어 그동안 연구가 미흡하였던 비색청자의 기형과 무늬 등의 연구와 이해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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