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복지"논하면서 복지국가 만들기 위한 개헌엔 ´묵묵부답´

 
최근 복지 논쟁이 가열되면서 언론에서 한국의 복지수준을 놓고 다른 나라의 복지수준과 비교하는 기사들이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각종 언론이나 학계 등에선 ´보편적복지´냐 ´맞춤형 복지´냐 ´선택적복지´냐 등 용어만 달리한 채 각양각색의 복지론을 등장시켜 유권자를 혼란시키고 있다.

그런 복지논쟁과 관련해 등장하는 국가들은 대개 영국과 네덜란드,스웨덴,노르웨이 등 서유럽과 북유럽의 국가들이 등장한다.

신문에는 그들 국가들과 OECD 국가들의 GDP,GNP,조세부담율, 복지수준을 나타낸 각종지표가 각종 수치와 통계를 동반해 한국과 비교된 채 그래프형태로 도배되고 있다.

이번 설을 앞두고 <경향신문>에서 특집보도한 <복지와 성장 대립하나?>라는 기사에서도 복지강국인 북유럽의 국가들의 수치와 사례를 찬반교수들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과 비교하며 보도했다.

논점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그 대상은 어차피 ´복지´와 관련된 논쟁들이다.

무상급식 찬반논란에 이어 ´무상보육´ ´무상의료´까지,´고용없는 성장´ ´성장이냐 분배냐´´보편적복지냐 맞춤형복지냐´등 이른바 복지논쟁이 줄을 잇고 이번 설날 상의 안주거리가 됐다는 평이다.

논점도 유럽 국가들의 과도한 조세부담율과 유럽 복지병과 마이너스 성장 등, 부유세를 신설 및 폐지문제 등, 대부분의 북유럽의 사례를 들며 한국의 복지문제를 논하고 있다.

결론적으로,이런 복지 논란에 대한 筆者의 평가는 "논란은 있지만 결론이 없어 유권자만 헷갈리게 할 뿐이다"라는 것이다.

유럽과 한국과는 국가의 성장과정도 다르고 국민들의 성향도 다르며, 자본주의 역사도 다르기 때문에 복지개념의 태동과정 자체도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그에따른 설명은 별반 없다.

좀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처음부터 모든 게 다른 서유럽국가들과 복지수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가정을 무시한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복지국가 건설에 대해 이미 수 십년전에 고민했던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왜 그런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기술혁신’과 ‘창조적파괴’´기업가정신´이란 용어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우리가 논하고 있는 이런 복지국가 건설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했던 경제학자 였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동력을 꿰뚫는 혜안을 갖춘 위대한 경제학자로 ´자본주의 붕괴예측론´을 주장해 자본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도래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물론 현실에선 지금도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여전히 진행중이며, 자본주의가 세계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나라도 나타났듯이 자본주의가 실업, 고용없는 성장, 빈부격차,환경기후 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문제 등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대한 지식인들의 저항이 심각해 진 것 또한 사실이다.

20세기 초 전 세계가 세계전쟁으로 대혼란을 겪던 시절 그는 자본주의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자본주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 결과 자본주의는 결국 내부모순에 의해 오늘날 유럽식복지국가모델인 사회주의국가체제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고,성장을 위해선 기업가의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이를 통한 신제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슘페터 이론의 결론은 자본주의가 경쟁과 효율면에서 우수하지만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통제가능하고 예측가능한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갈수 밖에 없으며 지식인들이 결국 그런 시스템을 선호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주창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대기업이 중심이 된 자본가계급이 소상공인이나 소생산자의 경제적기초를 파괴하고 경제구조에 타격을 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임금노동자 전락 등으로 자본주의적 질서인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유를 제한해 결국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수 밖에 없을 것으로 그는 분석했다.

이런 슘페터의 이론은 세계대전 전후 유럽사회에서 나타나는 대체적인 현상이었고 경제에 대한 중앙정부의 개입이 늘고 사적부분 보다 공적부분이 늘어난 당시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 슘페터의 이론은 이미 자본주의가 상당히 발달한 서구유럽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런 유럽식사회주의는 2차 세계대전 전후 30년 동안 유럽사회를 주도하는 이념이 되기도 했다.

그런 슘페터 이론의 구체적인 실현이 오늘날 유럽식 사회주의복지국가모델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문제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그런 사회주의 국가로 이행이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해 슘페터는 자본주의가´성숙한 상태´(State of Maturity)에서만 ´민주적이행´이 가능하다고 봤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성숙정도와 사회주의를 추진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사회주의로의 이행방법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대표적으로 성숙된 국가로 영국을, 미성숙된 국가로 소련을 예로 들었다.

실제는 1913년 미국의 산업구조는 독일보다 훨씬 성숙한 상태였지만 슘페터는 독일이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독일은 미국에 비해 훨씬 더 우수한 관료조직과 뛰어난 노동조합이 국민들의 삶을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영국,벨기에, 네덜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표방한 복지국가정책은 바로 이런 슘페터 이론과 일맥상통하며 이들은 단독으로, 혹은 보수정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해 사회주의복지정책을 지난 30년 동안 구사했다.

따라서 이런 ´성숙한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선, 국민들 개개인이 자기소득의 50%를 조세로 부담해도 조세저항이 있을리 만무하다.사실상 중앙에서 통제하는 사회주의 복지정책을 그대로 수용한다.

정부나 관료사회, 사회보장 등 모든 사회적제도 등이 이미 소득대비 50% 조세를 감당할 만큼 ´성숙한 단계´(State of Maturity)에 진입했기 때문인데, 이는 소위 사회 각 분야가 ´선진화´가 됐기 때문이다.

즉 정부,기업,가정.개인 경제주체는 물론이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선진화가 됐기 때문에, 정부의 공공의 복지정책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며 그에따른 조세부담을 기꺼히 수용한다.

성숙한 단계에선 미래를 위한 현재의 투자에 대해서 비용이라 보지 않는다.그 이면에는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공공의 역할이 시장보다 훨씬 정직하고 효율적이며 사회구성원들에게 부를 재분배할 수 있다고 보며 리스크가 훨씬 덜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슘페터가 언급한 ´성숙한단계´인 ´선진화´가 이미 진행됐기 때문이다.

즉, 슘페터가 말한 성숙한단계를 우리나라 ´선진화´라는 용어를 빌려 풀이하면 ´선진화´란 지도계층의 청렴과 솔선수범, 잘 훈련된 관료조직과 공공기업의 지도계층에 대한 지원,중하위계층에 대한 배려 등 상하간 수평간 사회적 신뢰관계가 전제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들 유럽국가들과는 그 모든 게 판이하게 다르다.선진화가 아직 안됐기 때문이다.

일단 이들 서구유럽국가들과 달리 한국의 자본주의 역사는 아주 짧다. 그마저도 고도의 압축성장을 통해 실현되어 왔고, 그런 이유로 일부에선 이를 두고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와중에 노동자의 희생이 강요된 게 사실이었지만, 역으로 그것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강성노조가 한국에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이들 강성노조는 이제 국민들로부터 지탄대상이 됐다.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달리 아직 한반도엔 무상복지국가를 건설한답시고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북한´이란 독재국가가 존재하고, 동시에 핵전쟁을 불사할 전쟁위험마저 상존한다.

그런 이유로 인해 한국에선 유럽복지국가 모델인 사회복지국가로의 이행에 대해선 알레르기 반응를 가진 국민들이 상당수이며, 그런 국민들과 관료들이 아직도 사회주의 제도에 미덥지 못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나 상위그룹 역시 국민들로부터 그리 존중받지도 않고 부정한 방법을 통해 상위그룹으로 진출했다는 인식이 남아 있으며, 관료사회 역시 아직도 권위를 앞세우며 기업들 위에 군림할려고 한다.

무엇보다 정치지도자 그룹은 국민들로부터 신망은 커녕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집단으로 낙인 찍혀 있다.

한마디로 슘페터가 언급한 사회주의 복지국가로 이행되기 위한 핵심 전제조건인 성숙화단계 즉, ´선진화´는 아직 멀었다.

현행 복지제도 역시 ´모럴헤저드´ 가 심각하다. 방만한 정부재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갈등도 깊고 지방재정운영에 대한 해당 지역민들의 반목도 심각하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복지국가를 표방한다며 부유세 등 추가적인 세금징수를 감행해 복지를 시행한다고 하면, 조세저항은 물론 폭동까지 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서구복지 국가를 예로들며 복지문제를 제기한 정치권이 그런 복지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논의해야 할 ´개헌문제´에 대해선 논의는 커녕 아예 ´묵묵부답´(默默不答)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를 얘기하려면,세금을 얘기해야 하고,세금을 얘기하려면 성장을 얘기해야 하며, 성장을 얘기하려면, 투자를 얘기해야 하는 게 정상이고, 투자를 얘기하려면 기업가정신과 교육문제,과학기술문제에 대한 얘기가 필수적으로 논의해야 정상이다.

특히 경제문제와 관련해선 성장을 뒷받침 할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도록 자유스런 기업활동 보장과 규제철폐나 제도개선 등에 정부가 나서야 하며, 그런 풍토개선을 이뤄낼 정치권력 구조 변화가 먼저 있어야만 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대기업들 역시 고용촉진을 통해 사회적책무를 다해야 하며 회사이익의 일부를 지역과 사회에 환원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런 모든 문제가 선순환 되고 지속가능한 복지가 되기 위해선 사회적합의와 사회적성숙을 이끌어내는 ´선진화´가 필요하며, 이런 선진화의 핵심요체는 정치권의 ´변화와 혁신´이수반돼야 한다.

이런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낼 개헌문제에 대해선 ´묵묵부답(默默不答)´ 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만 장황하게 늘어놓으니 누가 신뢰를 하겠는가?

정치권에서 아무리 서유럽의 복지수준 숫자를 신문에 도배해도 이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진정한 의미의 ´복지´는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슘페터가 말한 ´복지국가로의 이행´ 할 조건이 충족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충족하기 위한 ´선진화´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미성숙(Immaturity)된 상태에서 혁명을 통해 복지국가를 한답시고 사회주의 국가로의 이행을 감행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나라가 과거 소련이었다.

서구형 복지국가를 예로들며 복지는 논하면서, 정작 그런 복지국가가 되기 위한 여러 필요충분조건에 대해선 논의조차 안한다면, 미성숙된 상태에서 복지국가 꿈을 꾼 ´레닌의 소비에트 혁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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