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있다 할지라도, 시인의 노래가 없으면 그 아름다움은 완성될 수 없다. 금강산을 노래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없었다면, 금강산은 그냥 평범한 산일 수밖에 없다.이백은 란 시에서 양귀비를 노래한 바 있다. 시인이 되어 여인을 노래하는 것이 어쩌면 잡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백의 시는 양옥환, 한 여인을 향한 진심이었다.그리하여 양귀비, 양옥환은 이태백이란 시인으로 인해, 그 아름다움은 역사 속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리 후인(後人)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흔히 아
지난밤 원희룡 장관의 사자후(獅子吼)를 들으며 잠을 설쳤다. 온몸에 전해지는 원희룡의 분노는 국토부장관으로서가 아니라, 도덕과 원칙으로 살아온 인간 원희룡의 근본을 건든 데에 대한 인간적인 분노로 느껴졌다.양평고속도로 건은 이미 2년전 민주당에서 요구한 경로였다. 교통의 효율과 환경, 사업성 등을 평가한 결과, 기존안보다는 낫게 평가되어 수정된 것이었다.그러니까 국토부장관이 마음대로 변경된 안(案)이 아니었다. 더구나 김건희 여사 일가의 선산 땅값을 올리기 위한 변경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실을 두고, 해골 이해찬은
"도대체 얼마나 잔인해야 사형을 시키는 것이냐?“제주올레길 산책길에 죽임을 당한 어느 여인의 유가족들이 재판결과를 통탄하며 법정에서 내뱉은 말이다. 강간하고 나서, 얼굴을 못 알아보게 돌로 얼굴을 짓이겨버린 범인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다.그렇듯 대한민국에서 사형 선고는 웬만해선 내리지 않는 판결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약 60여명에 이르는 사형수가 있다. 사형을 언도 받았다면, 제주올레길 사건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을까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심지어 무
(데일리저널=정재학 편집위원) 필자(筆者)는 윤석열 대통령 통치 1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전혀 그 상세한 내용과 기준을 모르고 있었다. 무엇을 했으며, 그 무엇은 어떻게 됐는지, 아직은 평가 자체가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그러나 최근 문재인이가 했다는, ‘자신의 5년 업적을 윤석열 대통령이 1년만에 다 허물어버렸다’는 말을 듣고서야, 윤석열 대통령이 이룬 업적의 진실을 자세히 생각하게 되었다.우선 국방이 제자리를 찾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재개되고, 국군의 무장은 강화되고 있었다. 문재인 5년
필자(筆者)는 우리 민족이 참으로 지독하게 잔인(殘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6.25를 통해서 깨달은 바 있다. 죽음은 흔한 일이었고, 그 죽음의 방법은 처참 그대로였다. 몽둥이로 머리통을 깨부수거나, 우물에 던져넣고 죽이거나, 쇠젓가락으로 눈을 쑤시거나, 톱으로 썰어 죽이는 등, 처참과 잔인으로 점철된 전쟁이었다. 빨갱이들이 빨갱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그 잔인한 죽임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이유는 단 하나, 공산혁명을 위해서였다는 것이 그들의 항변과 변명이었다. 당연히 죽여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이었고, 죽여야할 사람들이
현대전에서 자주국방의 완결이란, 핵무장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핵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나오지 않는 이상, 핵은 무기로서 지존(至尊)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그 지독한 배고픔의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핵을 갖고자 했던 이유 역시 전쟁을 한순간에 끝낼 수 있는 게임체인저로서 강력한 핵의 살상력 때문이다.그래서 핵은 평화를 유지하는 힘의 역설로 존재한다. 핵을 가진 자와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공존의 법칙이 상식이 된 지 오래다.만약 우크라이나가 소련 붕괴시 보유했던 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면, 러
(데일리저널=정재학 편집위원)오늘은 과수원에서 하루종일 일을 했다. 전정을 할 때가 된 것이다. 병든 나무나 거칠게 자라서 다른 나무의 햇빛을 가리는 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묵은 가지는 쳐내야 한다. 한해를 지나는 동안 제멋대로 커버린 나무를 보면서, 국힘당 이준석이 떠오른다.지난 대선 시절, 발악을 하며 정권교체에 찬물을 끼얹던 인간이었다. 필자는 그 꼴을 보다 못해, '좌파는 이준석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라는 칼럼을 쓰며, 이준석의 정체를 알린 적이 있다.이준석은 누가 보아도 보수진영에 들어온 좌익이었다. 그는 국힘당 대표라는
[데일리저널=정재학 편집위원] 대한민국 경제를 지키고,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이끌고 있는 것은 기업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는 기업이 있음으로 해서 제품을 생산하고, 생산된 제품을 팔아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이 점 모를 국민은 없다.강한 기업은 강한 국가를 만든다. 강한 기업이 없는 강한 경제는 없다. 그러므로 국가는 기업을 위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활동을 보호하고 발전시킬 막중한 의무가 있음이다. 국가가 기업보호의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그건 국가일 수 없다.지난 문재인 민주당 5년의 통치기간은 국가반역의 시간이
하늘을 하늘이라 부르고, 땅을 땅이라, 꽃은 꽃이라 부르는 사람은 더 이상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 그것은 정답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요, 사물과 현상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반면 교육과 체벌이 필요한 자는 하늘을 하늘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땅을 땅이라 판단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하늘을 하늘이라 인식하게 하고, 땅을 땅이라 부르게 만들어야 한다.그러나 만약 하늘을 하늘이라 부르게 하지 못하게 하고, 땅을 물이라 하게 하는 자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마땅히 이런 자들을 우리 사회에서 축출시켜야 한
민노총 동원 협박과 폭력으로 MBC이사 강퇴시키고 촛불세력이사끼리 이사장 교체촛불폭력으로 정권장악 문재인 정권, 폭력으로 언론 장악, 시민혁명으로 끌어내야문정권 폭력과 권력 통한 언론 탄압과 언론장악 음모 실상문재인 후보는 지난 3월 MBC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을 만들어 공영방송이 다 망가졌다."면서 권력이 방송이나 언론을 지배하는 일이 없도록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했다.취임 100일 맞는 기자회견에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 서해해전으로 전사한 6인의 해군용사 장례식 때, 전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하게 오직 전두환 대통령만이 문상(問喪)을 했다. 바로 이 점,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향불을 올리며 고개 숙이는 이 모습은, 오늘날 왜 다시 전두환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지도자는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쓴 전두환 찬양시로 알려진‘처음으로’란 시는‘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로 시작한다.틀림없는 사실의 기록일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3. 비자금1985년에 있었던 국제그룹 해체 사건은 전두환의 대표적인 실정(失政)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한국의 기업 풍토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설혹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권력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권력에 의해 공권력과 금융 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었다.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공포에 질린 기업들의 자발적인 정치헌금이었고, 이는 고스란히 대통령의 통치자금이나 비자금으로 사용되었다. 무려 2000억이니 3000억이니 하는 비자금은 지금으로 보면 20조나 30조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 김대중은 정권을 잡자, IMF에 관해 이런 말을 남긴다.“그 많은 돈이 사라져야 할 국가적인 재난도 없었고, 전쟁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김영삼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도가 나고, 자살하고, 가정이 파괴되었는지 모른다. IMF는 20세기말 6.25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은 처참한 비극이었고, 5000만 국민들이 너나없이 겪은 깊은 시련이었을 것이다. 모 방송에 ‘자연인’을 다룬 프로가 있다. IMF로 인해 가정이 파탄난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살고 있었다. 그
전두환 대통령의 호(號)는 일해(日海)이다. ‘해 뜨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호를 알고는 있으나, 설마 이 호를 탄허스님이 지어준지는 모른다. 잘 알려진 바대로 탄허스님은 민족의 영광을 예언한 우리 시대의 큰스님이셨다. 아마 불자(佛者)치고 탄허스님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법정스님도 백담사에 있는 전두환 대통령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많은 스님들이 전두환 대통령의 백담사행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큰스님들치고 전두환을 찾지 않은 스님은 드물었다고 본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정치세력들은 개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말만 있을 뿐이지, 개헌의 목표와 의도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찬반의 공방도 없고, 민의(民意)를 추출할 토론의 광장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개헌이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좌파정권의 연장을 노림인지에 대한 국민적 판단도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과정이 없는 것이다.그러나 전두환은 비록 내각제에 대한 꿈을 접었지만 최선을 다해 9차 개헌을 했고, 그 헌법으로 문재인까지 무려 7기에 이르는 6공화국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
-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29 선언은 전두환의 구상과 결단에 다른 소산(所産)이었다. 노태우는 자신이 한 일이라고 주장하나, 당시 통치구조상 전두환 재가없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유명무실한 헌법위원회를 없애고 헌법재판소를 만든 것도 전두환 작품이었다. 6월 항쟁은 오직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을 뿐이고, 이는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전두환은 1986년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하자, 그때에야 비로소 얼어붙은 정치를 해금시킨다. 경제에 자신이 생기자, 드디어 정치선진국으로의 길을 향해 물길을 튼 것이다.1987년 6·2
만약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아웅산 태러 즉시 북한과의 전쟁에 돌입하거나 복수를 선택했더라면, 대한민국 경제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보복보다는 경제를 선택한다. 필자(筆者)가 전두환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두환은 어떤 문제를 만나거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상황을 피해 우회적으로 돌아가거나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직선적인 사람이며, 어떤 험로(險路)를 만나더라도 주저 없이 그대로 돌파해버리는 무인(武人)다운 추진력을 갖춘 사람이었다.경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제가 위기에 있음을
1980년대 우리는 전두환 전(前) 대통령을 ‘돌’이라 불렀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지적인 풍모가 없는 담담하게 생긴 그의 외모와 벗겨진 머리, 그리고 이름 두환에서 ‘두’를 연결시켜 ‘돌’이라 불렀다.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그의 이미지는 정말로 ‘돌’이었던 것 같다. 돌처럼 강하고 돌처럼 우직하고 돌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 전두환은 처음과 끝이 변함없이 한결같은 성격의 위인(偉人)이었다.그처럼 전두환은 솔직담백한 성격을 지닌 무인(武人) 기질의 대통령이었다. 만약 모든 것을 제쳐두고 성격만으로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라면,
반기문 총장께서는 청학의 이미지를 지니신 분이다. 그런 분이 비열한 음모가 횡행하는 더럽고 혼탁한 정계에 발을 딛는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더구나 좌우(左右)를 아우르겠다는 중도를 표방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를 모르는 바보 같은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중도는 좌우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부터 뺨을 얻어맞는 박쥐의 신세가 된다는 사실. 중도는 꿈에 불과한 일이었다.지금 우리는 좌우이념의 내전을 치루는 중이다. 대한민국을 북으로 보내느냐, 아니면 북을 우리의 품으로 오게 하느냐는 전쟁. 그러므
서울 양평동의 한 빌딩 근처에서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오래 기다렸다. 여름날 오후였다. 드디어 외출한 총책 '관덕봉'(북한에서 부여한 암호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뒤따라 수사관들이 9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주차장용 차량번호 인식 프로그램을 파는 IT업체였다. 기술은 북한에서 온 것이었다.국정원은 일 년 전부터 이 업체 동업자 3명의 뒤를 쫓아왔다. 북한 대남공작부서인 '노동당 225국'의 지령으로 남한에 지하당 '왕재산'을 결성, 20년째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 이들이 중국에서 북